[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J-전기보온밥솥에서 K-전기압력밥솥으로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J-전기보온밥솥에서 K-전기압력밥솥으로
  • 경남일보
  • 승인 2024.01.1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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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전국주부교실중앙회 부산지부 노래 교실 주부 17명이 일본으로 단체 여행을 갔다가 시모노세키에서 당시 유명했던 조지루시사에서 만든 이른바 ‘코끼리 밥통’을 비롯한 일제 물건을 잔뜩 사들고 귀국했다. 이를 목격한 아사히신문이 ‘한국인 관광객 덕분에 매출이 늘어난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게 된다. 이를 안 당국에서 당장 해외여행자들을 수소문해 이들의 통관 상황을 재차 확인해야 했다. 결국 관광여행사 간부 2명이 외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되고 여행자 1명은 입건됐다. 당시 한국은 경상수지 만년 적자 국가에 외채도 많던 시절인지라 외화벌이에 전전긍긍하던 시절이었기에 국내 언론사들은 일제히 비난 여론을 쏟아 내게 된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전두환 대통령이, 담당 비서관을 질책해 그에게 국내 전자사업 기술 관련 보고를 받고, “에라이. 밥통같은 놈들. 밥통도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주제에, 어떻게 일제 밥통을 사가지고 들어오는 여자들을 욕해? 왜 그네들이 일제 밥통을 살 수밖에 없느냐 말이야? 이봐, 이거 우리가 만들 수 있어, 없어? 6개월 안에 다 만들어 봐”라고 질타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1921년에 일본에서 전기를 이용해 자동으로 밥 짓는 기기가 처음으로 발명되었다. 전장에서 신속한 조리와 식사를 위하는 것이었다고 하나 민간 대중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었다고 한다. 한참 후인 1952년에 일본 도시바에서 스위치를 넣으면 자동으로 밥을 짓는 전기밥솥을 개발했고, 1965년에 보온병 전문제조사였던 조지루시사에서 밥을 오랫동안 따뜻하게 보관할 수 있는 보온 밥솥을 출시하게 된다. 그러나 이 보온 밥솥은 전기 없이 보온병 기술만 거의 그대로 도입한 것이라서 시간이 지나면 밥이 점점 식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조지루시는 전기로 보온기능을 유지시키는 새로운 보온 밥솥을 1970년에 출시한다. 1972년에는 미쓰비시전기에서 취사와 보온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전기보온 밥솥을 발표하면서 현대적인 전기보온 밥솥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어 1974년 조지루시에서 내놓은 코끼리표 전기보온 밥솥이 수백만 개가 팔릴 정도로 빅히트하면서 업계의 표준으로 인정받게 된다.

1965년에 금성사(현 LG전자)를 통해 전기밥솥이 한국에 처음 소개됐고, 1972년에는 일본 산요전기와 라이선스를 맺은 한일전기, 1974년 길평전기도 각각 전기밥솥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당시 밥솥은 밥에 찰기가 전혀 없는 등 기능이 시원찮아 소비자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대신 저장 기능만 있는 전기보온 밥통은 어느 정도 팔렸다고 한다. 그러던 중,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진 뒤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가전회사들도 전기밥솥 생산에 뛰어들게 된다.

먼저 오쿠에서 전기압력 보온밥솥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대웅모닝컴에서 세계 최초로 전기압력 보온밥솥을 개발하게 된다. 93년에는 삼성과 LG전자에서 국내 최초로 IH 전기압력 밥솥을 출시했고, 이후 90년대 중반, 성광전자(현 쿠쿠홈시스)에서 가마솥으로 지은 듯 한 고들 하면서도 구수하고 찰진 밥을 재현하면서 일본의 전기밥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만든다. 코끼리표 밥솥으로 유명했던 조지루시사는 밥솥보다는 보온병이나 텀블러에 주력하는 형편이다. 한국이 1980~1990년대에 코끼리 밥통에 심취했듯이,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산 쿠쿠 전기압력 밥솥은 필수 구매품이자 선물 1순위가 되었다고 한다. 더구나 중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호텔 주변 등에는 쿠쿠 대형 매장까지 있다고 하며, 중국어 음성 지원도 하는 전기밥솥도 출시됐다.

현재 국내 밥솥시장에서는 쿠쿠와 쿠첸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쿠쿠의 시장점유율은 70%에 달하며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미국, 베트남 등 해외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 법인의 지난해 매출도 300억원을 웃돌며 80% 신장률을 세웠다.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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