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그리운 까꼬실
[경일춘추]그리운 까꼬실
  • 경남일보
  • 승인 2024.01.1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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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경 갤러리 DOO대표
정두경 갤러리 DOO대표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어머니를 뵈러 진주에 간 김에 진양호 내 까꼬실에 다녀왔다. 너우니 꽃동실 청둑 뿔당골 시루봉 하만터 분딧골 뒷들고 게미 녹디섬 새미골 한골 샛골 똥매등 이 정겨운 이름들은 내 고향 까꼬실의 동네 이름들이다.

까꼬실은 임진왜란 북관대첩의 주인공 의병장 충의공 농포 정문부 선생의 후손들인 해주 정가 집성촌이었다. 아홉 살 봄 진주시로 이사 오며 떠나온 까꼬실은 남강댐 완공과 함께 진양호 물속에 잠겼다. 내가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냈던 집의 형체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이제 일부만 남은 까꼬실에 가려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셋째 언니와 우리는 배를 타고 청둑선착장에 내려 백두대간의 끝점인 꽃동실로 갔다. 덕천강과 경호강이 만나 남강이 되는 황학산의 지형이 다섯 마리 봉황이 알을 품은 형상으로 까꼬실을 감싸고 있어서 인물이 많이 나는 길지로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 이후 진주 지역에서 가장 많은 과거급제자를 배출한 곳이다. 꽃동실에서 걸어 고인돌을 지나 당산으로 분딧골로, 뒷들고를 지나 내가 입학했던 귀곡초교가 있던 곳으로 걸어간다. 발아래 소나무에서 떨어진 갈비와 상수리나무 잎이 수북이 깔린 산길, 양옆으로 나 있는 대숲길, 그리고 푹신한 흙길을 걸어 학교로 가는 길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바람 한 점 없는 겨울 한낮, 찾는 이 없는 고즈넉한 까꼬실은 가마우지와 오리떼, 백로들의 노는 소리만이 고요를 깨뜨린다.

입학해 1년 남짓 다녔던 귀곡초교 자리는 내 생각보다 훨씬 좁은 터였다. 상전벽해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폐교된 지 30년이 다 돼가니 그 사이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 서서히 빈 터를 점령했다. 입학만 하고 졸업을 하지 않은 나의 이름이 졸업생으로 비석에 새겨져 있는 걸 처음 발견했던 3년 전의 뭉클함이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앞들, 뒤들, 새미골 너른 들판은 무, 배추, 고구마, 감자, 수박의 명산지였고, 너우니 은빛 모래톱은 황어 은어가 떼 지어 빛났다는 망향비의 글귀를 되새긴다. 산업화의 이름으로 아름답고 넉넉했던 삶의 터전이 물밑으로 가라앉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살아온 흔적과 추억이 물속으로 고스란히 가라앉은 회한은 까꼬실 사람들에겐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그리움과 서러움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물속에 그대로 잠긴 고향 풍경은 세월이 흘러도 기억 속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오롯이 남아있으니 어찌 보면 사라지지도, 변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리움과 더불어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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