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인 노산초등학교 교사
“겨울방학에 할 것-눈맞이 우선 눈을 많이 맞으십시오. 겨울에 제일 반갑고 좋은 것은 눈 오시는 것이니, 눈이 오시거든 책을 덮어 놓고 뛰어 나아가서 눈을 맞으십시오. (중략) 동네 집 동무의 집을 찾아다니고, 그리고 동네 바깥 벌판에도 나가보고, 또 뒷동산에 올라가서 눈 속에 파묻히는 동네를 내려다보기도 하십시오. 그러면 눈과 하늘과 동네와 벌판과 겨울이 모두 한 뭉치가 되어 당신의 가슴 속에 삼켜집니다.” 방정환 선생님이 1920년대 창간한 ‘어린이’ 잡지에 실린 글의 일부입니다.
변변한 장남감도, TV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자연을 벗삼아 놀던 아이들에게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겨울방학 때 이렇게 저렇게 눈맞이를 하라고 자세히 일러주었다. 요 며칠의 맹추위에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겨울왕국이 된 듯 주차된 자동차 위에는 서리가 내리고, 아파트 안에 있는 연못도 꽁꽁 얼었다. 오직 겨울방학에만 볼 수 있는 겨울다운 모습이었지만 서리가 내린 자동차 옆을 지나는 아이도 스마트폰만 보고 있고, 꽁꽁 언 연못을 지나는 아이도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 겨울의 일상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그 어떤 어린이도 동장군의 모습에 전혀 관심이 없다. 내 어릴 적에는 서리가 내린 자동차에 누군가가 장난스럽게 쓴 낙서가 있었고, 꽁꽁 언 바닥이 있다면 그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노는 친구가 있었는데 말이다. 요즘 거리에서, 방과후에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느 계절이든, 어떤 날씨던지, 장소가 바뀌어도 모두가 한 모습이다. 모두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고 있다. 주변의 생물의 변화에 이렇게 무관심하니 옆에 있는 친구와 가족의 표정변화는 어찌 읽을 수 있으랴? 모두가 각진 화면만 보고 있는데 어떻게 창의적이고 깊은 생각이 있을 수 있으랴?
신경 건축학에서는 천장이 30㎝가 높아지면 창의력이 2배 증가한다고 한다. 100여년 전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눈맞이를 자세히 소개하듯 나도 하늘을 천장 삼아 놀 수 있는 겨울맞이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겨울방학에 할 것, 겨울맞이-요즘은 따뜻한 겨울이 많으니 추위가 찾아오면 밖으로 나가세요. 얼음이 보이면 깨어도 보고 얼음을 도화지 삼아 돌멩이로 그림도 그려보세요. 투명한 창이 있다면 용가리가 불을 뿜듯 입김을 불어 도화지를 만드세요. 그 도화지 위에 주먹으로 발바닥 모양을, 다섯 손가락 끝으로 발가락 모양을 찍어보세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기 발바닥이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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