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텀블러 패러독스
[기자의 시각]텀블러 패러독스
  • 김성찬
  • 승인 2024.01.2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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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찬 창원총국 취재부
김성찬 기자


따로 하는 공부가 있어 주말마다 한 대학에서 강의를 듣는다. ‘얼죽아’여서 그날도 수업 전 아이스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 해 강의실에 앉았다. 책상에 올려진 내 아·아를 본 교수님 왈 “김 기자님은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커피를 드시네요.…저는 텀블러를 꼭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즘 기후변화가 심각한 수준이잖아요.”

순간 단전에서 끓어오른 ‘변론의 욕구’가 목젖을 치고 올라와 혀끝에서 똬리를 틀었다. 하지만 출격명령은 없었다. 하늘이 조각나도 진도는 빼야하니까.

사이토 고헤이가 쓴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의 서문은 도발에 가깝다.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에코백을 샀는가? 텀블러를 갖고 다닐까? 단언한다. 당신의 그런 선의는 무의미할 뿐이다. 오히려 유해하기까지 하다.”

텀블러가 유해하다고? 안타깝게도 그렇다.

텀블러를 만들고, 사용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양은 플라스틱 컵의 13배, 종이컵의 24배다. 에코백 역시 비닐봉지를 만드는 에너지의 약 28배, 종이쇼핑백의 약 8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오죽하면 덴마크는 에코백보다 비닐봉지를 최대한 재사용한 후 재활용하라고 권고하고 있을까. 미국 ‘수명 주기 에너지 분석연구소’ 말대로라면 스테인리스 텀블러는 1000번, 에코백은 (그것도 환경을 걱정해 비싸게 산 유기농 면 소재라면) 2만번을 사용해야 환경에 도움이 된다. 고헤이의 말처럼 “멸종에 이르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일런지도.

그래서 어쩌라고? 텀블러·에코백 쓰지마라고?

그래도 쓰자. 대신 텀블러든 에코백이든 ‘한 놈’만 패자. 더이상 사지말고, 남는 건 ‘나눔’하고, ‘뽕’ 뽑을 때까지 (그 교수님처럼)하나만 주야장천 사용하자. 그럼 일회용품은? 어쩔 수 없다면 쓰자. 대신 쓰더라도 분리수거·재활용 더더더 신경쓰자. ‘안쓰는 플러그를 뽑고, 천연가스 버스 타고. 에코백·텀블러 쓴다고 기후 위기가 해결되지도 않는다’면서 그럴 필요 있냐고? 대답은 사이토 고헤이, 이 대담한 사상가의 말로 대신해 본다.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은 자명하다. 불가능하다고 뒷걸음질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당장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시스템 변혁’이라는 과제의 거대함을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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