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라면의 원조 자리를 포기한 닛신 식품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라면의 원조 자리를 포기한 닛신 식품
  • 경남일보
  • 승인 2024.01.23 14:2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라면은 중국어 ‘납면(拉麵-라몐)’에서 왔으나 일본(라멘)을 거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라면(ramyeon)으로 쓰게 되었고, 요즘엔 한국라면이 세계시장을 석권하면서 instant noodles이라는 영어보다는 라면으로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이 라면의 시원에 대해서는 중국에서 전투 시 비상식량으로 사용된 것이 유래라고 하는데, 당시 일본이 중일전쟁을 하면서 배워 왔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1948년에 대만계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安藤 百福-우바이푸-吳百福)가 설립한 일본 굴지의 식품 기업인 닛신식품(Nissin Food Products Co., Ltd.)에서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1958년)을 상품화해 시장에 내놓게 되었고, 또 1971년에는 세계 최초로 컵라면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창기 라면은 양념이 면에 더해진 형태였다가 이후 1962년에 스프를 분말로 만들고 따로 첨부한 형태의 봉지면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

라면이 한국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63년 9월 15일이다. 삼양식품 창립자 전중윤 회장이 일본의 묘조식품(明星食品-Myojo Food Co, Ltd.)으로부터 제조기술을 전수받아 처음으로 삼양라면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생소해 판매가 부진했지만, 무료 시식회에서 그 맛을 인정받으며 곧 서민들의 음식으로 환영받게 되었다. 1960년대 정부는 쌀 부족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혼식(잡곡밥)과 분식(밀가루 음식)을 장려하는 정책을 실시했는데, 라면이 널리 보급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1969년 한 해 동안, 1500만 봉지가 팔렸다고 한다. 1970년에 들어서는 즉석 짜장면, 칼국수, 냉면 등의 다양한 제품이 나왔는가 하면, 한식 문화에 알맞게 만든 된장라면도 출시됐다. 1982년 11월 17일 육개장사발면의 출시를 시작으로 용기에 직접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컵라면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 짬뽕라면, 비빔라면, 라볶이, 쌀라면, 기름에 튀기지 않은 건면 등 다양한 종류의 라면이 개발 출시되고 있다.

라면의 원조가 일본이라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예민한 입맛과 섬세한 조리솜씨를 바탕으로 라면을 다각적으로 연구개발해 세계시장 석권하고 이제는 일본을 훌쩍 넘어섰다. 조선, 철강, 전자, 자동차 산업 등이 그러하듯 한국은 성공적 벤치마킹의 명수인 것이다. 성공적인 벤치마킹은 먼저 앞선 선발주자인 상대를 보고 배운다. 그 다음은 그대로 흉내 내거나 따라(모방)한다. 마지막 단계는 상대를 뛰어넘는 것이다.

한국 라면은 대부분 매운 맛을 사실상 표준으로 삼고 있다. 지난 1991년 1위를 차지한 이래 지난해까지 32년 동안 ‘1등 라면’ 자리를 지켜온 신라면은 매울 ’신(辛)‘ 한자를 쓰고 있듯이 한국 라면은 매운 맛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80년대에 한국라면이 해외시장으로 수출되기 전만 해도 해외 체류 한국인들은 일본라면을 사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일본의 그 들쩍지근하고 느끼한 맛에 이내 질리고 만 경험들이 생생할 것이다. 많은 외국 유튜버 채널들이 매운 맛에 도전하기 위해 한국의 브랜드 라면들을 사용한다. 그런데 매운 맛이 한국 라면의 표준이 된 사연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 국민의 입맛에 맞게 라면을 매콤하게 할 순 없는가’라며 직접 삼양식품에 전화를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런데 라면의 원조로 알려진 닛신식품이 삼양의 불닭볶음면을 대놓고 베낀 카피 제품을 2020년에 내놓았다. 닛신 ‘볶음면’ 겉면에는 한글로 제품명이 표기돼 있다. 포장도 삼양식품의 까르보 불닭볶음면과 같은 분홍색이다. 그리고 지난해 5월 12일, 닛신식품은 다시 농심의 양념치킨면을 베낀 제품을 내놓았다. 닛신식품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매운 걸 잘 못 먹는 일본인들인데 ‘Hot & Spicy Fire Work’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은 벤치마킹은 하되 파렴치하게 위조하거나 짝퉁을 그럴싸하게 만들어 파는 중국인들이나 얍삽한 일본인들처럼 대놓고 베끼지는 않는다. 세계라면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연구개발에서도 한수 아래가 된 닛신식품이 라면의 원조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듯 보인다.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정효찬 2024-01-27 11:36:17
새우깡은 얍삽하게 베낀게 아니군요
샤인머스켓도 정당하게 훔쳐왔군요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