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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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4.01.2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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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시우담문학』 진주지역 시 동인지(2)
『시우담문학』의 편집체제는 기왕의 우리나라 의욕적인 무크지의 흐름에 유사하다. 초대평론, 초대시,시인론(박우담), 소시집(이진주), 초대평론(김남호), 신인등단(정수월.이현섭). 회원작품 등 순서가 대체로 그러하다.

초대시에는 강희근, 이종만, 이재훈, 석미화, 안채영, 김성진 등인데 이들 초대시편은 대체로 순서정이 아니라 시대적 의미이거나 지적 이미지, 역설이나 비유가 주는 기법적 전범이 될 만한 시편들이다.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시들은 박우담 시편들과 시인론이 될 것이다.

「구름 트렁크」는 박우담 시인의 대표시가 아닐까 한다.

“구름이 여자를 어둠으로 포갠 후/ 마을은 뒤숭숭해지기 시작했다/ 임산부 침대 위에서/ 여자가 빗방을로 녹아내릴 때/ 가냘픈 몸은 여행 중이었었다./ 가죽 가방의 지퍼가 이음새없이 /여자를 여닫았으므로 / 흘러가지 못한 빗물이 좁은 몸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이 시는 구름과 비, 그리고 여자와 지퍼, 트렁크가 지니는 여행 이미지를 결부시키며 흐르는 시다. 상상이 자유자재다. 그렇게 놓고 찬찬히 읽으면 관능과 비, 여자와 여행이 섞이면서 자아내는 무의식적 초월적 건너뛰기가 현란한 감성으로 흐른다. 시를 줄거리가 있는 문맥으로 읽지 말고 이미지의 부침과 더불어 잠수하는 본능적 터치와 그 질감에 젖어 있으면 된다. 자꾸 의미는, 문맥은, 하고 따라가면 읽기에 실패하고 만다. 이쯤에까지 읽으며 따라오는 독자들 중에서 아, 현대시의 무의미적 얼개를 느끼기 시작하면, 차라리 ‘나도 시’를 쓰고 싶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동인들의 시들도 순서정에서 무의식으로 흔드는 구절들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이현섭의 「질매재」, 허표영의 「애절하다, 손수건」, 백숙자의 「육체의 비밀」, 이기성의 「시를 탐하다」, 정수월의 「버팀목」, 이진주의 「방치의 감정」, 이루시의 「숲 이야기」, 김달희의 「목련」,김 책의 「구절초」정영혜의 「외눈과 함께 시작되었다」, 신정균의 「펜은 햇살이다」, 차보라의 「눈대중」,박신영의 「멸치」, 전하정의 「무지개」, 박숙완의 「비명」 등에서 그 흐름의 눈대중을 대어볼 수 있었다.

동인들은 초대시 이종만의 「나는 낚이고 있다」에서 사랑의 방식에 대해 사색해 보고, 이재훈의 시 「쥐」에서 쥐가 가지는 속성의 형상화에 대해 살펴보고, 석미화의 「산정에서」는 이미지 만들기가 주는 재미를 누려보고, 안채영의 「중심」에서 주제를 드러내는 서술의 일관성에 대해 알아보고, 김성진의 「고목」에 대한 관념과 이미지 입혀주기에 대해 관찰해 보고, 최희강의 「열쇠」에서 초월적 이미지 연습에 들어가 보고,류준열의 「나뭇잎 군무」에서 시적 사상이 가능한지 가늠해 보기를 권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박우담의 「시간」에 심취해 보자. 시는 비교적 평이하다.

“수업 종이 울린다/ 누구도 암흑의 시월이 올 줄 몰랐지/

미술 시간은/ 그 시절 제일 난처한 시간이었지/ 스케치북 없어 교실 뒤편에 통금시간처럼

앉아 있던 미술 시간/ 선생님은 수업 시작과 동시에 준비물/

검사를 했지/ 눈 지그시 감고 생각하면/ 에닐곱 명은 대뿌리에 손바닥을 갖다 댔지

선생님은 한쪽 손으로 늘 때렸지

우리는 원 밖에 있었고 선생님은 원 밖에 있었고 선생님의 한 손은 늘

바지 속에 있었지/ 후끈거리는 손으로 짝지와 장난을 쳤지/

주로 육성회비 못낸 애들/ 사정 없이 없는 돈 가지러 집에 보냈지/

아무도 없는 집/ 가져올 돈 없는 집에 있다가/ 미안하고 미안해서 며칠 수업과

헛돌고 있었지/ 시월의 호각 소리에 /골목으로 뛰어드는 아이들과 교사들도/

무기력했지/ 준비물과 육성회비 때문에/

늘 원 밖에 머물렀지/ 그래도 아이들은 알고 있었지/ 암흑속 도드라지는 건/

군화와 표어라고 당신의 무기력한 손도 / 늘 원 밖에 있다고 (후략)



시는 학생시절 미술시간 또는 육성회비 미납사태가 빈발했던 가난과 각박한 시대가 던지는 서럽던 시월(풍경은 단풍철 유려한 자연)의 받아쓰기 작품이다. 박우담 시로서는 비교적 덜 난해한 학생시절 이야기다. 학생도 원 밖에 있고 선생도 원 밖에 있었던 부조리를 지적하고 있다.

시인은 여기서 그냥 받아쓰기를 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추억이기도 하고 아픔이기도 한 시절의 줄줄 흐르는 결핍과 감당하기 힘드는 젊은 사내들의 일그러진 영웅, 그 초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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