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나는 여전히 삐뚜름한 필기체가 그립다
[경일춘추]나는 여전히 삐뚜름한 필기체가 그립다
  • 경남일보
  • 승인 2024.01.2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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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경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권인경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인생에서 수많은 인연이 있다지만 특히 요즘에는 기계와의 무수한 인연들도 존재한다. 컴퓨터, TV, 핸드폰 등의 편리한 온갖 디지털 기기들에서 AI까지 인간들의 수고로움을 도와주는 수많은 새로운 인연들이 생겨나고 있다.

X세대로서 컴퓨터도 도스에서 윈도우 체재까지 경험을 하고 거의 벽돌 중량의 핸드폰에서 손 안에 접히는 핸드폰으로 바꿔가며 지극히 아날로그적 삶을 살다가 디지털의 도입과 발전, 혁명을 모두 경험하고 있다. 현재는 더 작고 편리한 형태들이 나오며 앞으로는 얼마나 더 빨라지고 편해질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같은 세대라도 얼리어답터로 사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아날로그적인 삶이 좀 더 편한 나 같은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처음 돈을 모아 MP3를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내심 음악보다 어학 쪽에 비중을 두며 야심차게 출발한 구입동기와는 달리 기계 다루는 것에서부터 내 마음이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작은 세계 안에 어찌나 다양하고 복잡한 매뉴얼 들이 알알이 존재하는지 기계는 손가락 만한데 설명서 두께는 사전이었다. 편리함을 위한 여러 매뉴얼들을 익히는 것에 지치며 나의 MP3는 겨우 음악 스트리밍과 어학사전의 단순한 기계로 전락해 버렸다.

요즘은 주문조차도 키오스크로 하고 주문받은 음식을 로봇이 가져다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기계로만 운영되는 무인 카페 등도 곳곳에 있다. 이러한 기가급 속도의 디지털 환경에서 아날로그적 사고는 빛바랜 구식의 느린 것으로 취급되곤 한다.

지극히 아날로그적 인간인 나에게 이러한 급격한 디지털적 변화는 가히 반갑지 만은 않다.

점점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아도 되니 사람의 특징에 관심을 가지고 외우는 수고로움을 할 필요가 없고 쉽게 통화할 수 있으니 약속을 정확히 지키지 않는 경우들도 있게 되고 시리나 클로버가 있으면 혼자서도 충분히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되니 관계가 크게 중요치 않게 되며 생각을 깊이 있게 할 기회들도 사라졌다. 몇 번의 클릭으로 대부분의 일을 간단히 해결하려 하면서 움직임도 최소화가 되니 오히려 돈을 들여 운동을 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일도 생기게 되었다.

느리게 생각하고 의미 없지만 엉뚱한 발상을 하기도 하며 목적성 없이 걸었던 일들이 그리워진다.

물건을 사면 구조가 궁금해 분해도 해보고 기존의 물건들을 가지고 새롭게 상상해 보았던 일들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SNS에 새겨지고 있는 수많은 하드형의 말만 달콤한 고딕체보다 손 편지에 쓰인 사람마다의 다른 향기를 품고 있는 삐뚜름한 필기체가 정말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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