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마음의 그릇
[경일춘추]마음의 그릇
  • 경남일보
  • 승인 2024.02.0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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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인 노산초등학교 교사
이남인 노산초등학교 교사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첫 시간은 항상 그릇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준비한 여러 그릇을 살펴보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친구와 반 전체와 나눈 뒤, 그릇을 뒤집고 한 아이에게 그 그릇에 물을 부어 보라고 한다.

“그릇에 물이 채워지나요?” “아니요. 그냥 흘러 내려요.”

그리고 이번에는 그릇을 바로 세운 뒤, 아이에게 물을 부어보라고 하고 물어본다.

“이번에는 그릇에 물이 채워지나요?” “선생님! 당연히 채워지지요.”

아이들이 그릇을 바로 세우면 그릇에 물이 잘 담기는 건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한다. 사실 내가 이 활동을 하는 이유는 그릇을 사람에 비유해 눈에 보이는 현상을 통해 마음의 그릇을 설명해 주기 위함이었다. 각기의 다양한 재질과 모양의 그릇이 있듯이 사람도 각자의 개성과 특징이 있지만 다양한 개성 있는 그릇도 물을 채우는 방법은 하나다. 바로 그릇을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이다. 학교 수업시간이나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다양한 배움이 있겠지만 내가 그릇을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좋은 배움도 소중한 시간도 다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버리는 것을 일깨워 주고 싶어 하는 활동이다.

지난달 31일, 한국 축구대표팀의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16강 경기가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있었다. 상대편은 사우디아라비아였는데 경기장엔 4만명의 사우디 응원 관중이 사우디팀을 열렬히 응원했다. 한국은 후반전 시작 1분여 만에 선제골을 내주고 후반 추가시간 종료 1분 전 동점골을 터트리면서 경기는 연장으로 갔다.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며 8강 진출에 성공했다. 누가 봐도 경기종료 1분 전에는 승리의 희망보다는 패배의 쓴 맛이 더 가까웠을 텐데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태극전사들의 마음의 그릇이 돋보이는 경기였다. 관중의 야유와 그간의 부진에 대한 부담을 모두 끌어안은 채 담담하게 경기에만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의 마음그릇이 부러웠다. 다른 사람의 작은 볼멘소리에 흔들리고, 내가 처한 상황에 불만으로 흔들리고 뒤집히는 내 그릇에 비해 그들을 그릇은 너무나 단단하고 반듯했다. 나는 나의, 우리의 아이들이 이들처럼 대범하고 서로 다른 모습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을 가질 수 있도록 키우고 싶다. 작은 일에 흔들릴 것 같아 감싸주고 불편한 것은 치워줘서 안전하고 평편한 꽃길보다는 크고 작은 일에 부딪혀 가며 스스로의 그릇을 관리하고 단단히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불친절한 엄마, 선생님이 되려고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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