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강요된 노익장
[경일춘추]강요된 노익장
  • 경남일보
  • 승인 2024.02.0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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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호 경남투자경제진흥원장
오재호 경남투자경제진흥원장


청빈(淸貧)은 청백하여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 가난하다는 뜻이다. 청렴이 가난의 원인이 될 때만 그 가난을 청빈이라고 한단다.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청빈이 강요되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로부터 강요된 청빈은 비참하고 씁쓸함도 묻어난다. 선택을 강요당한 청빈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청빈과 그 뜻이 천지 차다.

노익장(老益壯)은 늙었지만 의욕이나 기력은 점점 좋아진다는 뜻이다. 후한 광무제 때 명장 마원(馬援)이 등장했다. 만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마원은 왕에게 토벌을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나이 62세였다. 왕이 그가 늙었다는 이유로 토벌을 맡기길 주저하자, 마원은 “소신이 비록 예순두 살이지만, 무거운 갑옷을 명주처럼 걸치고 젊은 장수보다 말을 더 잘 타는데 어찌 늙었다고 하십니까?”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장부가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궁해질수록 굳세야 하고 늙을수록 씩씩해야 합니다(窮當益堅 老當益壯)”라면서 훌쩍 뛰어올라 기량을 뽐내고 큰 공을 세웠다. 노익장은 마원의 ‘노당익장’에서 왔다. 우리는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한 70대를 두고 ‘노익장을 과시했다’라고 한다.

2025년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만의 특징은 ‘일하는 어르신’이 다른 나라에 견줘 많다는 점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분석한 ‘2023 고령자 통계’를 보면, 국내 65살 이상 고용률은 지난해 기준 36.2%로 주요국 중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고령자 고용률은 2021년 기준 OECD 회원국 38개국 평균(15.0%)에 견줘 2배 이상 높다.

이게 한국 어르신들이 기운이 펄펄 넘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거라면 바람직한 일이다. 바야흐로 ‘이구백(20대 90%는 백수)’과 ‘장미족(장기 미취업자)’이 넘쳐나고 청년들이 ‘삼일절(31세 넘으면 취업 불가)’에 절규하는 시대이자,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중규직(비정규직의 처우를 받는 정규직)’과 ‘88만원 세대(20대 비정규직 평균 월급 88만원)’가 신음하는 시대 아니던가.

그런데 일하는 어르신의 속사정을 보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일하는 어르신이 유독 많은 이유로 미흡한 국내 노후 소득 보장 제도가 꼽힌다. 65살 이상 고령자 중 공적연금을 받는 수급자 비율은 지난해 57.6%에 그친다. 이는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하는 공적 부조 성격의 기초연금 수급자를 제외한 수치다. 대다수 일하는 어르신들은 쉬자니 앞으로 먹고살기가 막막해서 노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요된 청빈처럼 우리의 노익장에도 씁쓸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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