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기 경상국립대학교 총장
경남혁신도시에 위치한 국방기술품질원 산하 국방기술진흥연구소(국기연) 일부 부서가 대전으로 옮겨간다는 소식이 2024년 새해 벽두에 지역사회를 강타했다. 2022년 5월에 국기연 1개 부서 30명이 이전한 데 이어 이번에는 다른 1개 부서 50여 명이 추가로 이전한다는 내용이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2022년에는 지방선거가 한창인 와중이어서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경남도, 경남도의회, 진주시, 진주시의회, 진주상공회의소, 지역 국회의원, 경남진주혁신도시지키기운동본부 등이 동시에 나섰다. 결국 국기연 일부 부서의 대전 이전은 없던 일이 되었다. 그 사이에 혁신도시 관련 법의 맹점이 부각됐다. 혁신도시 관련 법안으로는, 이전 기관이 다른 지방으로의 이전이나 부설기관 설립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법률 개정 등의 노력이 뒤따를 것으로 기대한다.
또 다른 문제도 지적됐다. 바로 경남혁신도시 이전 기관의 정주 여건 문제이다. 정재욱 경남도의원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중소도시 혁신도시는 정주 여건이 광역시보다 열악해 이전 공공기관이 얼마든지 자체 계획으로 알맹이를 비수도권 광역시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 언론은 사설에서 “외부에서는 직원들의 정주 여건 불만에 따른 이전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라면서 경남혁신도시의 정주 여건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했다.
정주 여건과 관련해 먼저 지적할 것은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의 사무실 부족 문제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국기연은 사무실이 없어 건물을 임차한 상태다. 국토안전관리원은 사무실이 협소해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이전 후 몇 년 동안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더부살이를 하다가 지난해에 겨우 새 건물을 마련해 이사를 했다. 혁신도시 내에 공공기관의 입주 공간 부족에 따른 근무의욕 저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전세를 사는 세입자는 하루라도 빨리 번듯한 집을 얻어 이사하기 위해 노력하게 마련이다. 민간기업도, 공공기관도 다를 바 없다.
다음으로 지적할 것은 혁신도시가 위치한 진주지역의 교육, 의료, 문화 환경이다. 임직원 본인의 평생학습 욕구는 물론이고 자녀들의 장래를 위한 교육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의료와 문화 환경도 정주 의욕을 제고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경남도, 진주시, 경남도교육청을 비롯해 국가거점 국립대학인 경상국립대가 이 문제들에 대해 숙의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의료 환경은 수도권이나 다른 광역 지자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열악해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과 역내외 유관기관과의 네트워크 형성이다. 가령 경상국립대의 경우 혁신도시 공공기관과 부문별로 협력 네트워크를 구성해 학술적 토론과 실무적 애로사항 공유 등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우주항공청 개청과 관련해서도 글로컬 대학 30 사업을 추진하는 경상국립대와 혁신도시 여러 공공기관의 협력적 네크워크 구축은 당면 과제이다. 이번 국기연의 경우 대전지역에 국방기술과 관련된 협력기관이 집중돼 있으므로 이들 기관과의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이전하려고 했다. 우리 지역이 지산학 협력으로 이러한 네트워크 구축 기반을 마련하고 확장해야 한다. 혁신도시 공공기관이 경남혁신도시인 진주에 위치할 때 얻는 편익이 증가한다면 이번 국기연 같은 사태는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
공공기관의 지역 혁신도시 이전 사업은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하는 사업이다. 그동안 크고 작은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성공적인 국가균형발전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 개선과 각 혁신도시의 정주 여건 개선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언제든 국기연 사태는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국기연 사태가 우리에게 제기한 교훈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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