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효 논설위원
삼국지 속에서 중국 촉나라 제갈공명은 평시는 물론 전쟁 중에도 병사 10명 중 2명을 교대로 휴가를 보내는 ‘장병휴가제’를 약속했다. 231년 제갈공명이 출사표를 올리고 10만 대군으로 위나라 정벌에 나섰을 때다. 이에 위나라는 30만 대군으로 맞섰다. 전투가 시작되고 싸움이 치열해지자 촉나라 장수들은 패전의 불안에 교대 병사의 휴가를 1개월 연기할 것을 건의했다. 하나 제갈공명은 “지휘관으로서 부하들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지금 비록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지만 일단 약속한 것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며 건의를 단호히 거절했고, 교대 병사 전원을 귀국시키도록 명령했다. 이에 감복한 교대 병사들은 남아서 싸울 것을 자청했고, 대승을 거뒀다. 이는 제갈공명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의를 반드시 지켰고, 병사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제갈공명이 지키고자 했던 신의가 실종된 상태다. 대통령은 물론 정부도, 여당도, 야당도 4·10 총선 승리에 있어 신의는 거추장스런 존재일 뿐이다. 총선에 승리할 수 있다면 지킬 수도 없고, 지키지도 않을 정책·약속을 마구 쏟아낸다. 이전에 했던 정책과 약속을 뒤집는 것인데도 거리낌이 없다. 그럼에도 사과도, 반성도, 부끄러움도 없다.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에 있어서도 대통령·정부·여당 모두 신의를 지키려는 의지가 없다. 당초 윤석열 정부는 공공기관 2차 이전의 신의를 지키고자 했다면 지난해 상반기에 공공기관 2차 이전 로드맵을 발표했어야 했다. 그런데 슬그머니 총선 이후로 미뤘다. 지역간에 유치 경쟁이 너무 치열해 미뤘단다. 최근에는 내년 말쯤 공공기관 이전을 발표하겠다는 둥 또 연기설을 모락모락 피운다. 공공기관 2차 이전을 놓고 지자체가 벌인 유치 경쟁은 문재인 정부 때부터 치열했었다. 문재인 정권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공공기관 이전을 연기했고, 그때 마다 연기 이유로 지역간 치열한 유치 경쟁을 그 핑계로 댔다. 그 핑계는 공공기관 이전을 연기할 때마다 써먹던 민주당 정권의 전매특허였다. 결국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신의를 지키지 않았던 탓에 정권을 빼앗겼다.
공공기관 2차 이전을 포함한 국가균형발전에 있어 윤석열 정부 역시 지방을 희망고문했던 문재인 정권의 전철을 답습하고 있는 듯 하다. ‘공공기관 2차 이전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이전을 연기하는 모양새가 영락없이 문재인 정권을 꼭 닮아 있다. 정관정요에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듯 국민은 신의를 지키지 않는 정권을 반드시 뒤집었다. 국민에게 했던 신의를 지키지 못해 정권을 잃었던 문재인 정권이 반면교사다. 제갈공명이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어도 했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했듯이 윤석열 정권도 국민에게 했던 공공기관 2차 이전 등 국가균형발전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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