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월대보름엔 왜 오곡찰밥을 먹는가
[기고]정월대보름엔 왜 오곡찰밥을 먹는가
  • 경남일보
  • 승인 2024.02.1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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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전 사천 용남중 교장
-사금갑(射琴匣)과 오기일(烏忌日)에 얽힌 정월대보름 설화-

정월대보름은 설날 이후 처음 맞는 보름날로 까마귀에 제사지내는 날이라 하여 오기일(烏忌日)이라고도 부른다. 공휴일이 아닌지라 다른 명절에 비해 관심이 좀 적겠지만 사실 정월대보름은 한자로 상원(上元)이라 하여 설날보다 더 성대하게 지냈던 명절이었다. 원래는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15일간이 축제일이었으며, 이 기간 중에는 빚 독촉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 였다.

좀 더 먼 옛날엔 정월 대보름을 한 해의 시작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하는 설도 있다.

정월대보름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오곡찰밥이다. 왜 하필 오곡찰밥을 먹는 걸까? 여기에는 전해오는 설화가 하나 있다.

삼국유사 ‘사금갑(射琴匣)’편에 보면 신라 제 21대 임금 비처왕 (또는 소지왕)이 정월 대보름에 천천정(天泉亭)으로 거둥(擧動)하기 위해 궁을 나섰는데, 갑자기 까마귀와 쥐가 시끄럽게 울어댔다고 한다. 그리고는 쥐가 사람말로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옵소서.” 그러자 임금이 기사에 명해 까마귀를 쫓아가게 했다.

신하가 까마귀를 어느 정도 따라가다가 어느 연못에 다다랐을 때 못 둑 아래에 두 마리의 멧돼지가 싸움을 하고 있어 그걸 구경하느라 기사는 그만 까마귀의 정체를 놓쳐 버리게 되었는데 조금 있으니 연못(서출지 書出池, 현 경주시 남산동 소재 저수지)에서 한 노인이 솟아올라 물위로 걸어 나와 기사에게 한 통의 편지를 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런데 그 봉투에는 開見二人死, 不開一人死(이 편지를 읽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읽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신하는 어전에 돌아와 임금님께 편지봉투를 바쳤다. 임금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단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편지를 읽지 않고 태우려 했는데, 옆에 있던 일관(日官, 천문관측과 점성을 담당한 관리)이 아뢰기를, “전하, 두 사람이라 함은 보통 사람을 이름이고, 한사람이라 함은 하늘에 태양이 하나이듯, 나라에 임금님이 한 분이니, 바로 전하(임금님)를 말하는 것일지 모르오니 편지의 글을 읽으시옵소서”하니 일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임금은 편지의 글을 읽어 보았다.

그 편지에는 딱 석자만 적혀 있었다. ‘射琴匣’(사금갑, 거문고 갑을 쏘시오).

임금은 곧 환궁하여 처소에 있던 거문고 갑을 끌어내어 활로 쏘게 했다. 그리고 거문고 갑을 열어보니 두 사람이 활에 맞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두 사람은 궁주(宮主)와 분수(焚修)하는 중이 상간(相奸)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임금을 해치려 했던 것이었다. 그 중은 고구려에서 보낸 ‘세작’ 즉 첩자였음이 밝혀졌다.

그로부터 정월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오곡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새카만 오곡밥 이 까마귀를 연상시킴은 물론 지붕 위, 담장 위, 나뭇가지에 얹어 까마귀들이 물고가기 쉽게 찐득한 찰밥을 해서 까마귀에 보은했다고 한다.

따라서 정월에는 이 짐승들 이름이 들어가는 첫 번째 날 즉 쥐(上子), 돼지(上亥), 말(上午-烏의 同音)의 날에는 특히 조심하고 근신 하는 날로 지켜오는 세시풍속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 ‘사금갑 편’에 기록된 이야기이다. 정월대보름에 오곡밥과 각종 나물, 부럼으로 겨우내 부실했던 몸의 건강을 추스려 갑진년 새봄의 힘찬 출발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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