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아들을 살해한 어머니
[경일칼럼]아들을 살해한 어머니
  • 경남일보
  • 승인 2024.02.2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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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헌 변호사
 
이송헌 변호사


사람들은 타인의 말을 거의 대부분 그대로 믿는 습성이 있다. 사기꾼이 계속 자신의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것도 사람들이 타인의 말을 생각보다 쉽게 믿기 때문이다.

76세의 노모가 50대의 아들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가 무죄 판결을 선고받은 아래 사건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쉽게 타인의 말을 믿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사건은 A(어머니)의 신고로 시작됐다. A는 “아들이 숨을 안 쉰다”고 신고했고 경찰에게 자신이 소주병으로 아들의 머리를 내리치고, 그 다음 수건을 이용해 술에 취한 아들을 목 졸라 살해했다고 했다. 검찰은 76세인 A의 말을 믿고 살인 혐의로 기소했으나 법원은 살인을 자백한 A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자백하는 사람에게 무죄가 선고된 아주 이례적인 사건이다. 법원은 ① A가 범행을 재연하지 못한 점(신고 후 9시간 뒤 시점), 특히 경찰이 ‘목을 졸라보세요’라고 함에 대해 A가 ‘어떻게 해요’라고 반문한 점과 소주병으로 내리치면서도 병의 파편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당시 현장에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파편이 하나도 없이 치워져 있은 점, ② 아들의 시신에서는 소주병 파편으로 인한 상처가 없는 점 등에 주목했다. ③ 체중 100㎏이 넘는 아들을 76세의 여성인 A가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것도 쉽게 믿기 어렵다.

위 사건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범죄전문가인 검찰과 경찰이 A를 유죄로 봤다는 점이다. 그들은 ‘말’이 창조하는 심상에 휘둘린 것으로 보인다. 말이 있었으므로, 범죄 전문가인 경찰과 검찰이 말을 믿은 것이다. 경찰·검찰도 말이 있으면 믿는다. ‘내가 범인이오’·‘내가 피해자요’하면 믿는다. 신고자가 ‘저 사람이 범인이오’하면 일단 믿는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달린다.

‘내가 죽였다’고 하면 경·검찰은 그 말을 믿고 나아간다. 그러므로 형사사건에서는 사실 ‘선빵불패’ 같은 묘한 법외적(法外的)인 법칙이 있다. 먼저 고소하는 자가 ‘피해자의 자격’을 따 낼 수 있다. 물론 무고죄가 있어 함부로 고소하면 처벌될 수 있으나, 일단 수사기관은 당신의 말을 믿고 달린다. 말은 이토록 무섭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의 말을 쉽게 믿는다.

위 사건에서도 노모가 자신을 범인이라고 하니 수사기관은 이를 믿을 수밖에 없다. 자백하는 사람이 나오면 수사기관은 그 자백하는 자의 진술에 의존해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범인을 잡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독자님들이 경·검찰이라면 자백하는 A의 말을 믿지 않고 의심의 눈초리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거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타인의 말을 믿는다. 어머니 A에 대해서는 1, 2, 3심 모두 무죄 판결이 나왔다. 무죄 확정 이후 사건은 인천지방경찰청으로 내려갔다고 하고 경찰은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했다 하나, 이 글을 쓰는 2024년 2월까지는 아무런 추가 보도가 없다. 사건 발생 후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고, 당사자들의 진술도 헝클어져 있어 수사기관은 그 때의 상황 파악이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현장 보존이 돼 있지 않아 증거가 없기에 새로이 누군가를 기소하기가 매우 어려울 거다. 아주 색다른 방식의 완전범죄 내지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없는 범죄의 탄생일 수 있다. 거꾸로 생각하면 어머니 A는 경·검찰을 속여 ‘진범’을 숨겼을 수도 있다. 범인도피죄를 범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우리의 말은 경·검찰 및 법원을 움직일 정도로 강력하다. 그러나 진실이나 본질은 찾는데 있어서는 말이 장애 요인이 될 때도 있다.

우리 주변에 보이스피싱이나 사기의 범죄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우리가 타인의 말을 쉽게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이 만들어 내는 심상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금 더 사태를 차분히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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