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습격당한 반민특위의 김상덕 위원장
[경일포럼]습격당한 반민특위의 김상덕 위원장
  • 경남일보
  • 승인 2024.02.2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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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무심사를 지나서 낙동강을 따라 현풍 쪽으로 가면 당산삼거리가 나온다. 좌우에 여유있게 휘돌아가는 낙동강 구비가 멋있다. 우곡교를 건너서 보드라운 황금모래로 유명한 회천을 따라 고령 읍내로 갔다. 2·8독립선언 105주년 기념식이 지난 2월 8일 열렸다. 설 연휴 전날이었다. 조촐한 자리였지만 군수를 비롯한 지역유지들이 많이 왔다. 식전 행사로 공연이 있었다. ‘나 하나 꽃 피어’와 ‘영웅’을 불렀는데 카랑카랑하고, 웅장한 목소리가 행사장을 압도하였다. 마치 내 하나가 나서서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생각으로 영웅 김상덕 선생을 외면하고 있는 이 시대를 나무라는 것 같다.

몇 년 전 김상덕 선생의 생가에 갔었다.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폐허가 되어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2·8독립선언을 주도했고,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다 임시정부 문화부장으로 해방을 맞아 김구, 김규식과 함께 귀국했다. 부장이란 직책은 지금의 장관이다. 고령에서 제헌의원으로 뽑혀 헌법을 만들고, 반민특위 위원장을 하신 분이 김상덕 선생이다. 그런데 그의 생가가 내버려져 있다. 입구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이렇게 된 게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죄송스런 마음이 든다.

일제 고등계 형사 출신인 서울시경 최운하 사찰과장과 종로서 사찰주임 조응선이 반민특위 특경대에 1949년 6월 4일, 체포되었다. 반민특위를 위협하기 위해 대중 시위를 조직한 것이 드러났던 것이다. 다음날, 서울시 경찰국 사찰과 소속의 경찰관 440명이 반민특위 간부 교체, 특별경찰대 해산, 경찰의 신분보장 등을 요구하며 집단사표를 제출하였다. 곧바로 6월 6일, 장경근 내무차관과 김태선 서울시 경찰국장의 명령으로 윤기병 중부경찰서장과 무장경찰들이 반민특위 청사를 습격했다. 건물 주변을 기마경찰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윤기병은 장탄한 권총을 휘두르면서 소리 질렀다. “여기 있는 놈들 모조리 끌고 가라!” 총을 든 경찰관들은 “여기 있는 놈들 대부분이 빨갱이들이야~ 여긴 빨갱이 소굴이라구.” 경찰은 무력을 행사하여 반민특경대를 무장해제시키고, 사무실에 보관된 친일파 조사 서류, 통신기구, 호신용 무기 등을 모조리 압수하고, 불태웠다. 반민특위 직원 22명은 부상을 입고, 적십자병원에 입원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이 호통을 쳤다. “이놈들아!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국법을 수행 중인 국가요원들에게 이러고도 너희들이 무사할 것 같으냐?” 윤기병은 “최운하 과장과 조응선 주임을 진작 내주셨으면 이렇게까지 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내놓으시면 조용히 물러나겠습니다”라고 했다. 국회에서 문제가 커지자 이승만 대통령은 ‘반민특위의 (친일경찰에 대한) 체포 위협은 국립경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자신이 직접 특경대 해산을 명령한 것’이라며 습격자들을 옹호했다.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킨 6·6습격사건을 주도한 김태선은 그후 수도경찰청장, 내무부 치안국장 등 경찰 요직을 거치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행동대장 노릇을 하다가 2년 후 이기붕 후임으로 제5~6대 서울시장을 4년 11개월 동안 했다. 관선 시장 가운데 재임 기간이 가장 길다. 윤기병은 1953년에 제6대 서울경찰국 국장에 취임했다. 현재 서울시, 서울경찰청 홈페이지에도 기록되어 있다.

김상덕 기념사업회는 2·8독립선언 기념식과 김상덕 추도식을 매년 열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심각한 갈등, 대립, 분열의 원인이 해방 직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게 행패를 부린 친일파 때문임을 생각하면 더욱 김상덕 선생이 그립다. 친일청산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 아니고,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지역사회 구석구석에 튼튼히 자리 잡고 있는 친일세력과 잔재를 찾아서 환하게 밝혀야 한다. 행사장을 나오는데 “이놈들아!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라고 외치는 김상덕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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