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촌 다녀오겠습니다(3)통영 연명예술촌
예술촌 다녀오겠습니다(3)통영 연명예술촌
  • 백지영
  • 승인 2024.03.0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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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실어온 영감, 엮으니 예술이더라
예술촌으로 향하는 길은 구불구불 고갯길의 연속이다. 경남지역 상당수 예술촌은 아이가 줄어든 농산어촌 학교들이 경쟁적으로 문을 닫던 시절, 그 폐교 건물에 터를 잡고 운영을 시작했던 데 기인한다. 마천루 사이 뻥뻥 뚫린 직선 도로보다는 사계절 자연을 품고 등고선을 따라 굽이굽이 달려야 닿는 외곽 지역부터 아이들 웃음소리가 사라졌기 때문인데, 그렇게 비어버린 공간을 문화예술의 향기로 채우고 있다.

통영 연명예술촌도 그렇다. 통영IC와 통영대교 인근 인구 밀집지를 지나 미륵도 남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산양일주로를 달리다 보면 마주하는 조그만 어촌 마을, 연명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다른 점은 바다다. 산과 들에 에워싸인 다른 예술촌들과 다르게 시원한 바다를 품고 있다. 예술촌에서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윤슬이 반짝이는 수평선 위, 어제와는 또 다른 빛깔을 머금고 있는 일몰을 매일 같이 만난다. 영감의 원천이다.

 
연명예술촌을 나서면 마주하는 바다 일몰.


◇갈등 딛고 주민들과 ‘형·동생’=연명예술촌의 시작은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양초 연명분교 폐교 건물로 작업실이 필요한 지역 작가들이 하나둘 찾아들었다. 여느 폐교 건물이 그렇듯, 교육청 소유 건물을 빌려 쓰는 구조였는데 당시만 해도 그 주체는 작가들이 아니었다. 연명어촌계가 체험 학습 공간으로 쓰겠다며 빌린 폐교 건물 일부 공간에 작가들이 다시 세를 들어 사는 일종의 전전세 구조였다.

한때는 갈등에 시달리기도 했다. 학교가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기증한 땅에 지어졌던 만큼, 마을 주민이 아닌 작가들이 폐교에 들어온 것을 경계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로 개관 25주년, 강산이 두 번 넘게 바뀌는 동안 꾸준히 한적한 어촌마을을 찾으면서 어느새 마을 주민들과도 서로 족보를 알게 되고 형·동생으로 지내게 됐다. 연명마을에 들어서면 보이는 다양한 벽화 역시, 마을에서 아트페어를 개최했던 당시 예술촌 작가들이 한 땀 한 땀 그린 것이다.

어촌계가 임대료 부담으로 폐교 건물에서 나간 뒤, 예술촌은 직접 교육청과 임대 계약을 맺고 온전히 전시실과 작가 작업실만으로 그 공간을 채우고 있다. 운영 초기에는 미술 외에도 문학·음악 등 다양한 장르 작가들이 활동하기도 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작업 공간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미술·공예 작가들만 남게 됐다.

 
연명예술촌.


◇통영 12공방 맥 이어 함께 ‘상생’=연명예술촌은 도내 다른 예술촌과 비교해 지역색이 강하게 묻어난다. 우선 구성원부터 통영 출신이거나 통영에 거주하는 이들로 채워졌다. 통영에서도 남쪽 끝자락에 가까워서일까, 회원 중 그 지역 작가가 반은 될까 싶은 경남 여타 예술촌과는 상황이 다르다. 현재 예술촌에는 입주작가 8명을 비롯해 회원이 모두 30명가량 되는데, 대부분이 통영 사람이다. 통영의 맥을 제대로 이을 수 있는 건 결국 지역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술촌은 예로부터 전통공예가 발달한 통영의 색채 역시 물씬 머금고 있다. 통영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한산 진영에서 시작한 공방들이 번성하면서 조선 후기 한양 이외 지역에서는 가장 많은 장인이 자리 잡고 최상급 작품을 만드는 등 이른바 ‘12공방’으로 명성이 높았다.

오늘날까지 나전칠기·소목·부채·갓·누비·장석 등 다양한 전통 공예가 이어지며 통영의 문화 예술에 영향을 주고 있는데, 이를 현대 주류 예술이 아니라며 배제하기보다는 끌어안아야 한다는 게 예술촌의 생각이다.

실제 현재 예술촌에는 한국화·서양화·사진·나전칠기·도자기·섬유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가 입주해 있다.

장치길(한국화) 촌장은 “통영 12공방의 맥을 잇고 있는 공예와 상생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함께 섞여서 작업을 하고 있다”며 “지난해 나전·도자 콜라보(협업) 전시를 했는데, 이 역시 서로가 윈윈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윤경아 작가 작업실에 설치된 도자 작품들.


◇동피랑 아닌 ‘동피랑 갤러리’=특별한 일이 없는 시기, 예술촌의 일상은 평온하다. 입주 작가들은 옛 교실을 개조한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예술촌 건물 입구에 마련된 전시공간 ‘동피랑 갤러리’에서 다양한 전시를 선보인다.

‘동피랑 갤러리’는 한때 연명예술촌이 실제 통영 동피랑 마을에서 5년 정도 운영한 갤러리를 예술촌으로 옮겨온 것이다. 통영시가 운영하는 자그만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몇 해 힘을 합쳤는데, 공간은 작아도 관람객이 많아서 작품도 은근히 판매되는 등 나름 재미를 봤다. 이후 2012년 예술촌 내 전시실로 사용되던 공간으로 갤러리를 이전하면서 더는 동피랑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지만, 그 이름은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입주 작가나 회원 작가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열흘 정도씩 선보이는데, 매일 예술촌으로 출퇴근하는 장치길 촌장이 관리를 맡고 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어두는데, 지역민보다는 외부에 많이 알려져 여름 휴가철에는 꽤 많은 이들이 방문한다. 외부 작가들이 놀러 올 때면 장 촌장이 시원하게 자신의 작업실을 개방하고 함께 예술 이야기를 나눈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입주 작가가 적었던 탓에 건물 관리가 버거워 비가 새는 등 폐허 같았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김명성(사진) 작가는 “버려진 폐교를 초창기 입주 작가가 힘을 합쳐서 관리도 하고, 크고 작은 공사도 하면서 지금의 면모를 갖췄다”고 말했다.

 
이선정 작가 작업실.


◇지역작가 생존의 몸부림 ‘아트페어’=예술촌의 연중 가장 큰 행사는 8월 통영아트페어와 10월 정기전이다. 특히 아트페어에 대한 애착이 크다. 지역 작가들이 생존하려면 전시도 중요하지만, 작품 판매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작은 지역에서 미술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올해로 15회째를 맞았다. 그동안 통영시민문화회관 실내체육관, 연명항 등 다양한 곳을 떠돌며 개최하다 지난 2022년부터는 통영 스탠포드 호텔 그랜드볼륨 홈을 빌려서 열고 있다.

지역에서 아트페어를 열 경우 관람객 확보가 관건인데, 여름 휴가철이면 1000~1500명의 투숙객으로 만실이 되는 호텔에서 개최할 경우 어느 정도 관람객이 충족될 거란 계산에서다.

물론 광주·대구 등에서 지자체가 개최하는 아트페어들에는 몇억 단위 예산이 투입되는 것과 달리, 통영시 지원금 1500여만 원으로 아트페어를 만들어야 하다 보니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10년 넘는 기간 차곡차곡 자체 부스를 제작해 뒀고, 부스·조명 등을 설치하는 작업 역시 구성원들의 노력 봉사로 소화하는 덕에 그나마 유지는 할 수 있다.

장 촌장은 “아트페어는 지역 작가 작품을 팔 수 있는 생존의 몸부림임과 동시에, 외부 작가들 작품도 함께 선보이는 만큼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장이 된다”며 “아트페어를 더 활성화하고 제대로 안착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예술촌은 앞으로도 지역에서 작가들이 살아남기 위한 연대를 이어나가는 한편 작가로서 지역에 대한 책무에도 앞장설 계획이다.

과거 통영에서도 더 소외된 지역으로 꼽히는 욕지도 등 각종 섬을 찾아 전시를 진행하고, 섬마을 어르신들에게 난생 처음 유화를 감상할 기회를 선물했던 것 역시 지역 작가로서의 지니는 책무감에서 비롯됐다.

장 촌장은 “조선시대 통영 12공방에는 수조도나 의장용 장식화 등을 그리는 화원방이 있었다”며 “지금 통영에서도 우리 예술촌 작가들이 지역 문화에 영향을 주고 뚜렷한 정체성과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도록 중심을 잘 잡아보려 한다”고 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정영화 작가 작업실을 지키는 반려 고양이.

 
정영화 작가 작업실.
연명예술촌 입주 작가들.

 
연명예술촌 내 동피랑갤러리.

 
김명성 작가 사진 작업실.

 
장치길 촌장.
천기영 작가 나전칠기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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