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안행진과 학익진
[경일포럼]안행진과 학익진
  • 경남일보
  • 승인 2024.03.0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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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국민의 공감대가 큰 스포츠로는 축구만한 것이 없다. 스포츠가 스포츠라지만, 이것만은 스포츠 이상이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국가 동력의 상징과 같은 것이었다. 지나간 일들을 되살펴 보자면, 1978년 차범근의 유럽 진출, 1984년 세계청소년대회 4강,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골로 연결된 손흥민의 질주 이미지 등이 우리에게 자랑이었고, 자신감이었다. 우리의 국력 신장을 반영하는 거울이 바로 축구였다. 축구는 우리에게 거울효과를 준다. 그런데 아시안컵 축구의 우승만은 늘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에도 실패했다. 세계적인 선수 출신의 클린스만 감독은 한계를 드러낸 채 경질되었다.

나는 축구를 보는 안목의 수준이 아마추어도 되지 못하지만, 그가 3백을 고집하는 것을 보고 안 되겠다는 생각을 미리 했다. 그는 원톱인 조규성이 문전에서 헛발질을 해도 중용했다. 준결승을 앞두고, 해설자로부터 또 3백을 쓴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하, 오늘 경기 졌구나 했다. 수비를 강화해서 경기를 이길 수 없을뿐더러 3백 자체가 움직임이 둔하다. 일반인들은 4백이 수비를 강화한다고 오인한다. 4백은 좌우 윙백이 오버래핑으로 공격에 가담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오히려 공격형이다. 반면에 3백은 빈자리를 두고 오버래핑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영락없는 수비형이다. 공격은 대체로 고대의 진법에 빗대면 안행진이다. 기러기가 날아가는 행렬은 V자가 아니면 W자이다. 아래쪽의 끝이 날아가는 방향이다. 모서리가 하나면 원톱이요, 모서리가 둘이면 투톱이다. 대체로 보아, 현대축구는 이 같은 안행(雁行)의 포메이션을 함께 쓰기 때문에, 서로 양보하지 않고 압박하는 미드필드 싸움이 격하게 전개된다. 이 안행진에 맞설 수 있는 포메이션이 있다. 로마자 형상으로 보면 U자와 비슷하다.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사용한 학익진이다. 기러기의 행렬이 아닌, 학이 편 두 날개의 형상이다. 두 날개의 중심축은 좌우 윙어다. 윙어의 역할을 갈마들며 대신할 요원은 윙어 아래의 윙백이다. 윙어와 윙백이 돌아가면서 좌우 측면을 공격하면 화력이 배가된다. 이때 원톱이니 투톱이니 하는 예봉은 주춤해질 수밖에 없다. 주춤할수록 적을 포위하는 형국이 된다. 가장자리와 가운데, 비상(飛翔)과 자복(雌伏)을 잘 조화해야 하는 게 학익진이다. 이것은 가운데로만 공격의 길을 찾는 안행진보다, 공격 루트를 다변화한다. 그런데 이번 패인은 3백에 있지 않고, 다른 데 있었다. 언론에 뒤늦게 알려진 선수들 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자중지란? 차라리, 주중적국이다. 한 배를 타도 마음이 맞지 않으면, 이적행위나 다름이 없다. 말이 쉬워도 그만큼 원팀이 된다는 건 어렵다.

앞으로의 축구가 문제다. 골의 가치에 지나치게 매몰되어선 안 된다. 이제는 어시스트와 크로스에 대한 가치를 발견해야 할 시점이다. 나는 우리 축구사에서 만족할만한 윙백을 본 일이 없었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볼 때, 1986년 월드컵의 허정무가 평균 수준의 윙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윙백을 육성하지 않으면, 우리 축구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작년 월드컵에서, 거침없이 질주하는 손흥민의 중앙돌파가 승리를 어시스트했고, 유효한 높이로 감아 찬 이강인의 크로스는 예측불허의 골로 연결되었다. 나처럼 강호의 무림이 아니어도 축구를 보는 눈이 최고수인 문병로 교수(서울대 컴퓨터공학과)는 이강인의 크로스 한 개는 뻥 크로스 스무 개의 가치가 있다고 극찬한 바 있었다. 그에게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축구 선수 이전에 먼저 겸양과 인간됨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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