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슨트와 함께 보는 전시]일상의 풍경展
[도슨트와 함께 보는 전시]일상의 풍경展
  • 백지영
  • 승인 2024.03.11 2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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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세라믹창작센터
국제레지던시 결과보고전…9명 40여 점
성악가 출신 이효재 도슨트 노래로 문 열어
“지금 만나는 ‘일상의 풍경’전은 이 미술관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레지던시 입주 작가들이 이곳에 머무르며 느낀 감정을 표현해 둔 결과 전시에요. 수도권에서 온 작가님들이 많았는데 김해 진례면 농촌에서 마치 템플 스테이 하는 것처럼 느껴졌나 봐요. 그럼 의미에서 전시에 앞서 한국 가곡 중 농촌의 정경을 표현한 곡, ‘향수’를 들려드리려 해요. 정지용 시인이 일제에 빼앗긴 조국을 돌아갈 수 없는 고향 땅에 빗대 적은 시에 곡을 붙인 노래인데요. 음악가로서 제가 느낀 ‘일상의 풍경’을 담고 있는 곡이기도 합니다.”

지난 6일 오후 2시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큐빅하우스. 20여 명의 관람객의 앞에 선 이효재 전시해설사가 진중한 표정으로 가곡 ‘향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선영 작가의 ‘Spiritual Fable(초자연세계의 우화)’를 소개하는 이효재 전시해설사.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미술관 복도를 가득 메우는 중후한 목소리에 취한 듯 한 관람객이 손을 비스듬히 들고 느릿느릿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보통의 미술관에서는 보기 힘든 이색적 풍경이 펼쳐진 것은 이 자리가 ‘성악가 도슨트가 들려주는 음악과 전시 이야기’ 현장이기 때문이다.

3월은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의 주력 건물인 돔하우스 전시가 교체되면서 큐빅하우스 내 전시 2종만 보여줄 수 있는 시기인데, 이 기간 방문객들도 알찬 시간을 보내고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프로그램이다.

성악 공연과 전시해설 일을 병행하는 이효재 전시해설사가 진행한다.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뉴 락’展과 ‘일상의 풍경’展 두 전시를 연이어 해설하며, 설명에 음악적 얘기를 녹여내는 것은 물론 각 전시 전후로 노래도 부른다.

‘일상의 풍경’展은 지난해 8개월간 미술관 세라믹창작센터 입주 작가 9명이 제작한 도자·설치 작품 40여 점을 선보이는 결과 전시다.

여타 전시와 비교하면 작가들이 바로 옆에 거주했던 까닭에, 작업 과정을 지켜보고 작가들과 얘기 나눌 기회가 많았기에 이를 전시해설에 녹여낸 점이 특징이다.

 
조은필 作 ‘친절한 불편’.
가장 먼저 조은필 작가의 공간에 들어서면 깨졌다 다시 붙인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진청색의 도자기들이 어두운 조명 속에 관람객을 맞는다. 바닥에 놓이고 천장에서 드리워진 작품들은 왜인지 익숙하지 않은 형태를 띠고 있어 다소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작가님의 어머니가 키우시던 꽃과 식물을 묘사한 건데요.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나요? 저기 보시면 식물 위에 돌이 얹어져 있어요. 보통 나무와 식물은 위로 자라는데 여기 있는 작품들은 밑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작품 제목 ‘친절한 불편’처럼 인간이 식물을 잘 자라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가지를 자르고, 지주대를 설치하고, 돌을 대는 행위가 과연 식물에도 좋은 행위겠느냔 질문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송나원 作 ‘상호작용 기관’.
이어지는 송나원 작가의 구역에서는 인간관계를 이야기하는 대형 설치 작품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단번에 이해하기엔 어렵게 느껴지는 작품인 까닭에, 이 전시해설사 역시 작가에게 그 의미를 물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것끼리 만나면 붙지만 같은 것끼리 만나면 멀어지는 자석에 인간관계를 빗댔다는 답이 돌아왔다. 모두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가까워지려고 하면 적당히 서로를 밀어내는 성질을 도자기에 담았더란다.

그제야 서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도자기들이 실은 완전히 이어진 부분이 없다는 사실에 눈길이 간다. 이 전시해설사가 흔들어 보이는 둥근 판을 따라 뾰족한 가시처럼 돋아난 건 쇳가루였다.

오선영 작가는 많은 관람객이 구매 의사를 밝혔을 정도로 단번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도자기 연작을 선보인다. 회화 작가인 그는 평면이 새하얀 도자기의 곡선을 캔버스로 삼아 미술관 주변의 자연을 초자연적 우화로 그려냈다. 세필로 연청·진청·청록 등 푸른 계열의 장면을 그려냈는데, 각종 박물관에 전시된 청화 백자 문화재들과는 다르게 모던한 느낌을 준다.

 
은희경 作 ‘아침을 넘어 밤을 지나 다시 아침이 올 때까지’.
은희경 작가의 ‘아침을 넘어 밤을 지나 다시 아침이 올 때까지’는 인간이 사는 실재 세계와 가상 현실을 함께 표현하는 작품이다. 도자기로 구워낸 인간 형상이 모로 누워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빔프로젝트가 쏜 가상의 이미지가 어지러이 일렁인다. 가상의 세계에 빠져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현대인의 밤을 표현했다. 귀를 기울이면 천장에 매달린 양방향 나팔 모양의 기다란 관에서 작가가 조용히 읊조리는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엄기성 作 ‘수집된 이미지 조각들-폭포’.
엄기성 작가의 공간에 들어서면 선명한 연둣빛 배경에 현수막처럼 건 알록달록 콜라주 이미지에 팝아트답다는 느낌을 받는다. 엄 작가는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본 이미지를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작가로, 이렇게 확보한 이미지를 콜라주 하는 것은 평면 작품에만 그치지 않는다. 도자 조각을 만드는 중간 중간에도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대로 이미지를 붙여 작품을 완성해 낸다.

“제가 이 작품 제작 과정을 직접 봤는데요. 레진에 스프링에 이미지를 막 붙이셔요. 추상적 상상력이 많이 동원해서 마치 그라피티처럼 작업을 하시는데요.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작곡가가 손 가는 대로 작곡하는 즉흥 환상곡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유재연 작가는 자신의 마음속,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불안과 슬픔 감정을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표현한 도자 작품들을 선보인다. 엉성한 팔과 다리는 비대한 머리와 몸통을 받치는 게 힘들어 보이고, 표정은 과장돼 이리저리 시선을 흔들리는 인물들은 작가의 페르소나가 돼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 간다.

 
쿠오슈판 作 ‘나의 보물, 나의 보석’.
대만에서 온 쿠오슈판 작가는 미술관 인근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항아리·장독을 한국 전통 식재료들이 가득 채우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김치, 고추장, 된장 등이 한국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봤던 작가는 장독과 항아리들에 영혼이 깃든 것처럼 사람 얼굴을 입혀 귀여움을 자아내는 도자기들도 탄생시켰다. 싹이 돋아난 양파 형상에 표정이 그린 작품 역시 그 속에 영혼이 깃들었다는 생각에서 탄생했다.
 
김미루 作 ‘무제(해방)’.
다음 공간의 주인공, 김미루 작가는 도예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흙의 원형을 변형해 새로운 형상을 만드는 것은 선호하지 않는 작가다. m자 모양을 띠는 ‘무제(해방)’ 역시 기존 흙의 형상을 최대한 구현해서 하늘에 떠있던 것을들 미술관에 굳건하게 안착한 모습으로 설치한 작품이다.
 
루스 주시리 作 ‘Topography of Memory(기억의 지형)’.
마지막 공간은 천장에서 드리워진 대형 도자 설치 작품 ‘Topography of Memory’가 압도한다. 호주 작가 루스 주시리가 전시실에서 5일간 직접 빚은 작품이다. 꽃처럼 피어나고 형태가 변해가다가 해체되고 다시 재활용돼 새로운 작업에 포함되는 과정을 담은 임시 조각이다. 여러 겹의 실 형태를 드리워 숲속 풍경을 묘사한 이 작품에는 곳곳에 조그만 잎이 붙어있고 하얀 새도 한 마리 앉아있다. 작품을 굽지 않은 만큼 흙이 마르는 과정에서 일부 표면에 금이 가고, 근처에 매달린 잎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모두 작가가 의도한 것이다. 전시가 끝나면 작품은 철거돼 하나의 흙으로 돌아간다.

이효재 전시해설사는 “오늘 만난 작품 중 각자 마음에 드는 작품이 다를 텐데, 그 모든 것이 정답”이라며 “예술에는 어떤 게 좋고 나쁘고 하는 게 없는 만큼, 많이 보고 느끼고 가길 바란다”며 전시해설을 마쳤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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