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의대 증원, 의료계 과냉각 상태에 돌을 던지다
[객원칼럼]의대 증원, 의료계 과냉각 상태에 돌을 던지다
  • 경남일보
  • 승인 2024.03.1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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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화학에 과냉각 현상이 있습니다. 액체를, 어는 온도 아래로 차갑게 하여도 얼지 않고 액체 상태로 있는 현상입니다. 조용히 안정된 상태에서 천천히 온도를 낮추면 과냉각 현상이 나타납니다. 서서히 식히면 분자가 굳어지지 않고 계속 움직이니까 온도는 내려가지만 얼지 않습니다. 과냉각은 비정상적인 균형 상태입니다. 과냉각 상태는 외부에서 균형을 깨는 자극이 오면 쉽게 즉시 갑자기 깨집니다.

우리 사회에도 과냉각 현상이 있습니다. 경제가 큰 환경 변화 없이 조금씩 조금씩 어려워질 때, 실제는 힘들어 포기할 한계점을 넘었는데, 조금씩 허리띠를 졸라매다 보니 어느덧 한계점을 넘습니다. 우리도 경험했었죠.

많은 자영업자들이 경기가 계속 조금씩 조금씩 나빠지는데 사업을 접지도 못하고, 어떻게든지 원가를 줄이고, 시간을 더 내서 일하고 심야 심지어는 24시간 문을 여는 상태로 겨우 버티고 있었죠.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이라고 하면서 최저임금을 2년 동안(2017년 6470원에서 2019년 8350원)에 29%가량 올렸습니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가니 과냉각 상태로 겨우 버티던 자영업자들이 무더기로 파산하거나 폐업했습니다. 저 정도 임금 줄 능력이 안되면 사업하지 말라는 비아냥도 뒷전으로 들었습니다. 세상은 연결되고 얽혀있는데, 갑자기 소득만 강제로 올려 해결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 의료계는 어떨까요? 의사는 의사 총수가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목숨과 관련된 필수 의료분야(응급의학과,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뇌혈관)에 모자랍니다. 필수의료분야가 과냉각 상태입니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대기 같은 징후로 경고했습니다.

필수분야 의료수가는 원가의 70% 선이라 합니다. 환자를 치료할수록 적자가 쌓입니다. 어떻게 견뎌왔습니까?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견뎌왔습니다. 가장 허리띠를 졸라맨 사람이 수련의, 전공의들이었습니다. 필수의료분야가 과냉각상태였지만 불안한 균형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과냉각 상태를 깨는 외부 자극이 생겼습니다.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보건복지부는 ‘의대생 2000명 증원’이란 돌을 던졌습니다. 필수의료 의사 부족은 현재 문제인데, 의대 증원은 10년 이상 뒤에 나타날 효과입니다. 그마저 나중에 그들이 필수의료로 갈 것이라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과냉각 상태는 갑자기 깨집니다. 전공의 집단 사직은 그렇게 시작됐고, 사회 혼란이 시작됐습니다. 엉뚱한 돌은 정부가 던졌는데, 이에 반발하는 전공의를 욕합니다. 생각없이 돌을 던진 쪽을 비난해야지요.

과냉각 상태는 본질에 맞게 조심스럽게 풀어야 합니다. 본질에 맞는 대책도 조심스럽게 풀어야 할 것을 본질과 무관해 보이는 돌(의대 증원)을 갑자기 던지다니, 무슨 의도였을까요? 세상은 연결돼 있어 만능열쇠 하나로 풀리는 문제가 별로 없습니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면 경제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발상으로 밀어붙인 것과 뭐가 다릅니까?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 고려하여 치밀하게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것이 선진국입니다.

정책이 잘못됐다고 확인되는 순간 머리를 맞대고 다시 짜야 합니다. 아프지만 본질에 맞게 해결하려 나서야 합니다. 억지로 밀어붙이면 사태는 더욱 나빠집니다. 그동안 구축했던 필수의료 체계가 무너집니다. 무너진 기반을 복구하려면 오래 걸리고, 아니 복구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나중에 그 좋던 의료 체계를 무너뜨린 책임, 보건복지부, 교육부, 의협, 전공의, 국민,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요? 누가 책임질지 모르지만 피해자는 약한 국민입니다. 홍수가 나면 낮은 지역부터 잠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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