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4·10 총선, 어처구니(雜像)가 많아야
[경일포럼] 4·10 총선, 어처구니(雜像)가 많아야
  • 경남일보
  • 승인 2024.03.1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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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술 경상국립대 교수
윤창술 경상국립대 교수


‘어처구니가 없다’라고 하는 표현이 있다.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힌다는 뜻이다. 여기서 어처구니란 귀신을 쫓고 건물의 위엄을 표시하기 위해 한옥의 용마루끝과 처마끝에 올리는 작은 흙 인형인 잡상(雜像)을 일컫는다. 이러한 어처구니가 많을수록 건물의 품격이 높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처구니란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번 4·10 총선은 저출산·저성장·지방소멸 위기, 기후 위기, 미국 대선 위기 등 중차대한 격변기 속에서 치러진다. 대한민국이 처한 현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번 총선은 시대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를 뽑는 절대절명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선거에서 현명한 선택들이 모여져야만 대전환의 문턱을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과정에선 이러한 절실함이 보이지 않는다. 비전·인물·바람 없는 거대양당의 공생 고착화 과정을 보노라면 착잡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잘못된 선거제도인 승자독식의 소선구제와 위성정당이 허용되는 준연동형비례대표제로 인해 국회의원 300명 중 각 정당의 텃밭 지역구와 비례대표 대략 200명 이상은 ‘공천=당선’이라는 구조가 성립한다. 선거도 하기 전에 비뚤어진 틀은 이미 짜여졌다.

소선구제하에서 텃밭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양당은 당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하므로 소속 의원들은 공천받기 위한 충성 경쟁에 몰두하기 마련이다. 당대표는 이 틈을 타서 자기 파벌을 굳건히 구축하기 위해 공천의 칼을 휘두른다. 지금 민주당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파당(派黨) 정치의 극치라고 할만하다. 국민의힘 공천 역시 민주당처럼 노골적으로 싸우지 않아서 밖으로 불거지지 않고 있을 뿐 친윤 후보들은 순항하고 있다. 또한 거대양당은 이번에도 21대 총선 때와 마찬가지로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무용론’에 앞장서고 있다.

‘공정하고 정당하게 추천한다’는 공천이 거대양당의 파벌주의와 패권주의가 지배하는 사천으로 변질되면서 이에 묻혀 제대로 된 정책 또한 보이지 않는다. 이러니 과연 우리나라에 정당이 필요한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거대양당의 파당식 정당 공천에 의존하는 선거제도의 폐해를 고쳐야 한다는 당위성만 다시 한번 확인하는 셈이다.

이대론 정쟁의 21대 국회가 연장될 판이다. 이렇게 암울한 상황에서 늦었지만 저출산의 근본 원인인 수도권 블랙홀 현상을 타파할 수 있는 정책(공약)이라도 제대로 다뤄주면 좋겠다. 과도한 중앙집권체제로 인하여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만큼 이와 연계된 지역균형발전(지방분권)은 이제 시대의 과제가 되었다.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조선시대 정조대에도 지방에 여러 가지 경제·사회적 문제점들이 발생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의 법전인 대전(大典)을 새롭게 편집, 정리하여 편찬한 대전통편을 반포했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지방분권 시대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법제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이 거의 없어서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하기 위한 정비를 했다는 거다. 법제 정비는 국회의원의 몫이니만큼 지방분권의 상징적인 컨트롤 타워가 될 ‘지역·가족 균형발전부 신설’ 정책만이라도 이번 총선의 핵심 공약으로 다뤄주길 희망한다.

아울러 이를 파벌주의와 패권주의에 젖어 있는 국회에만 맡겨선 또 실망할 수 있다. 세상을 조금이나마 변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유권자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만 한다. 그 실천 방안의 하나는,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가 ‘지역·가족 균형발전부 신설’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후보를 한 명이라도 더 입성시키는 일이다. 국회의사당에 어처구니(잡상)를 많이 설치하면 좀 나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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