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배래선
[경일춘추]배래선
  • 경남일보
  • 승인 2024.03.1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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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수필가
김유진 수필가


가족 친지와 총장님의 축하 속에 삼십 년 넘는 군인생활을 명예롭게 전역을 하는 자리다. 계룡대 전역식장에 남편은 군인으로서 마지막이 될 후배들의 교차 칼 도열을 받으며 입장했다. 군인은 정복을 입고 어깨에 계급장을 붙이면 정말 멋있어 보인다. 젊은 시절 제복과 젊음이 만나면 혼기 꽉 찬 처녀들이 반할만했다.

나는 집에서 살림만 하던 터라 어려운 자리에 입고 갈 입성이 무척 마음이 쓰였다. 오랜만에 남편 동기들과 군의 어른을 모시고 집안 친척과 남편 선후배도 참석해 축하를 해주는 자리였다. 고민이 돼 장롱 속에 옷들을 꺼내 보니 눈에 쏙 들어오는 옷이 없었다. 난감했다. 같은 동네 선배는 한복을 입으라고 했다. 공감하며 다음날 한복 대여점으로 갔다.

이게 웬일인가! 유행의 소용돌이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복이라면 전통적인 멋을 지녀야 하는데 변한 옷 모습에 망설여졌다. 퓨전이란 유행이 한복 시장에 깊숙하게 침범해 있었다. 내가 찾는 한복은 치마는 풍성한 치마 단에 말기가 있어야 하며, 저고리는 반듯한 고대가 뒷목을 감싸고, 아름다운 깃으로 세련미를 더하고 날렵한 섶에서 여성미를 풍기며, 소매 화장이 늘어뜨린 아름다운 배래선이 있어야 하고, 적당한 도련으로 가슴을 여미며, 길게 늘어뜨린 고름으로 교양미를 풍기는 저고리가 제대로 된 한복이다. 이것이 전통한복이다. 내가 결혼하던 날 폐백실에서 입었던 붉은 치마에 연분홍 저고리도 그랬다.

요즘은 저고리에 배래선이 없어졌다. 한복 연구가도 각성해야 할 일이 아닌가. 외국 사람들이 보면 지금의 옷이 우리 전통 한복인 줄 알까 봐 부끄럽다. 내가 보기에 전통에서 한참 벗어났다. 예전에 우리 할머니 어머니 속적삼보다 못하다. 사진으로 보면 조선시대 기생들이 입던 옷과 많이 닮아있다. 저고리에 우아한 배래선이 없어지고 팔에 딱 붙은 것 같은 저고리는 한참 낯설었다. 나는 한복 대여점 발품을 팔아 여러 곳을 방문해 간신히 내가 원하던 옷을 찾았다. 쥐색 치마에 연분홍 저고리, 끝동은 흰색으로 임산부 배만 한 배래선이 선명한 우리 한복을 빌려 입고 축제장에 참석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멋진 한복이 그날의 영광을 사진으로나마 오래도록 돋보이게 해 주었다. 오늘날 시간이 지날수록 한복에는 배래선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굳이 이런 식의 퓨전 한복이 필요한가. 일본은 불편해도 기모노를 퓨전화 시키지 않고 전통을 지킨다. 기본이 흔들리면 전통의 혼과 맥이 끓어진다. 유행도 좋지만 모두 자각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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