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69)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69)
  • 경남일보
  • 승인 2024.03.14 2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23)진주여자고등학교 출신 문인에 누구 누구가 있나?(1)
진주여자고등학교 출신 동문회 문인 모임인 일신문학회(회장 김지연)에서는 동인문집 『일신문학』 3호를 내어 경남문단에 화제를 던지고 있다. 진주여고는 진주시 상봉동 비봉산 아래 세워져 연면히 흘러오는 학교로 전국에서 국가가 세운 학교가 아니라 저 일제하 백성들(범도민)이 세워 민족교육을 하고자 했던 민립학교로 유명하다. 건립일은 1925년 4월 25일이었고 건립 당시 이름은 일신고등보통학교로 몇차례 교명을 변경하였다가 1951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고정되었다. 진주고등학교와는 건립주체가 같았지만 일제의 폭압으로 여자고교만 민립으로 개교하고 남자학교는 공립으로 개교하는 어려운 탄생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 학교가 어언 올해로 100년이 된다.

우리가 여기서 유념해 둘 것은 일제때 관에서 세운 학교를 공립이라 하고 백성이 주체가 되어 자립하고자 새운 학교를 사립(私立)이라 하여 일제는 애써 사립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뜻이 있는 분들은 지금도 ‘사립’을 버리고 ‘민립’이라 말한다.

전통이 깊으니 그 그늘에 자란 문학나무도 그 곁에 어느새 거목으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소설가 박경리다. 이번 책에는 박경리의 수필 「동경 까마귀」를 실었다. 수필은 장호(章湖) 시인의 「동경 까마귀」를 한 구절 인용하면서 일본 사람들과 우리나라와의 ‘까마귀’에 대한 관념상의 차이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사변적인 일로부터 깊이 있는 언어의 내면까지를 훑어내면서 작가가 가져온 일본사람들의 본성에 대해 터치하는 글이다. 시작은 저변이지만 결론은 결코 저변이 아니다. 작가의 사색과 그 연조를 짚을 수 있게 한다.

이어서 대가급으로 시인 김여정이 시를 내놓고 있다.



내 고향 남강가 보리밭 사잇길을 걸었다



탱자나무 울타리와 어깨동무하고/ 검붉게 익은 뽕나무의

오디를 맛보며 걸어



백사장을 지나 은물결 반짝이는 강가에 이르니

건너편 대숲이 피리를 불고



강변 빨래터에 앉아 빨래하시던/ 아.어머니 그립고 그리운

내 어머니가



하얗게 빛나는 구름이 되어

훨 훨 하늘에서 날고 계셨다



보리밭 사잇길은 어머니에게로 가는 길이었다


-「보리밭 사잇길」 전문



이 시를 오늘 진주를 사는 사람들이 읽으면 그 배경이 잘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장대동이나 칠암동 일대는 예사로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고 시가지 들어서기 전의 그 일대는 보리밭이 바람에 쓸리는 자연이요 대밭을 어깨동무로 하는 곳이고 백사장 씨름판이 추석 분위기를 달구는 곳이기도 했다. 거기다 촉석루 아래 남강이 흐르고 빨래터가 있고 예술회관 자리에는 옥수수가 자라고 밭가에는 동네에서 비공식으로 흘러나온 오물들이 한데 모여 달밤 목욕하러 가다가 발삐끗 낭패를 보게 한 냄새 짙은 웅덩이도 있었다.

1910년 경남최초의 중등 실업학교로 세워진 진주 농업학교 그 근처에는 농사원이 있어서 시인 설창수 선생이 벼다수확 경진대회때 초청되어 예술제때 입었던 두루마기 그대로 입고, “하나인 것이 동시에 둘일 수 없는 것이/ 민족의 가슴팍에 살아있는 논개의 이름은/ 백도 천도 만도 넘는다”고 시를 읊었다 하니 시인에게는 시낭송이 하나의 자연스런 노래로 불려졌음이 분명하다. 시인이 가는 곳에 낭송은 자주 언변 뒤에 따라왔었으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