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돌집
[경일춘추]돌집
  • 경남일보
  • 승인 2024.03.2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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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수필가
김유진 수필가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일명 돌집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집이 있다. 잡지의 화보와 텔레비전에 가끔 등장하기도 했던 집이다.

그 집은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지만 마당부터 울타리까지 돌과 바위로 꾸며져 있었다. 그래서 돌집이라 부른다. 주인은 37세 젊은 나이에 죽을병에 걸려 죽을 자리를 찾아서 충청도에서 발길 닿는 대로 온 곳이 이곳이란다. 나뭇잎을 이불 삼아 잠을 자고 산나물로 끼니를 해결하면서 돌에 꽂혀 돌을 하나씩 옮기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언제 나았는지도 모르게 병이 완쾌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전해 주었다.

모든 사람은 늙고 병들어 죽는다.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 누구의 부모가 되어 모두 늙는다. 우리 시아버지는 간암 말기 시한부 3개월 인생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 왔다. 시집온 이후 나에게 항상 따뜻한 마음을 건네주신 어른이시다. 더욱 마음이 아팠다. 마지막 시간까지 시아버님을 후회 없이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기도가 본가인 시아버지를 공기 좋고 풍광 좋은 돌집으로 거처를 잠시 옮겼다. 최선을 다했지만 더 잘 해드릴 걸 하는 후회만 남았다.

특히 집주인과 비슷한 연배에 말이 잘 통하고, 그분의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을 고비를 자연 속에서 살아났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에 시아버님은 무척이나 흡족해하시면서 본인도 반드시 회복되실 것을 믿었다.

“어미야 이런 곳이 있는 줄 알았다면 진작 내려올 걸” 진작 오지 못함을 무척이나 아쉬워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다. 어쩌면 돌집이란 환경이 용기이며 희망이었다. 시아버님의 입가에 번진 환한 미소가 금방이라도 병을 이겨 낼 것 같은 모습이었다. 월요일 오후부터 목요일까지 돌집에서, 주말은 우리 집으로 모시고 아이들과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자주 했다. 이게 마지막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잘해 드리고 싶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도 할아버지를 무척 좋아했고 잘 따랐다. 박식하신 시아버지께서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이야기도 많이 해 주셨다.

시아버님은 내가 모시고 오기로 선택한 일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여생을 큰아들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게 시아버지께 마지막 효도하는 기회라고 생각한 나의 선택이었다.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더 해드리고 싶었다. 시아버지에 대한 나의 진심이었다.

오늘날, 부모님의 마지막 모습을 요양병원에서 배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무렵 자식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한 부모는 열 자식 거느려도 열 자식은 한 부모 못 섬긴다’는 옛말이 귓전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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