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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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4.03.2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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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진주여자고등학교 출신 문인에 누구 누구가 있나?(2)
지금 『일신문학』(3집)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번에는 박경리와 김여정(시인)을 살폈는데 두 번째로 정혜옥(수필) 작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정혜옥은 수필가로 널리 활동해온 작가인데 1954년 개천예술제에서 시 「국화」로 장원을 해 기염을 토했다. 그간 대구에서 주로 활동하여 대구 가톨릭문인회 회장으로 봉사하기도 했다. 대구시문화상을 받았고 『풍금소리』등 수권의 수필집을 내어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를 맡기도 했다. 이번 3집에는 수필「모자」를 발표하고 있다.

일단 그의 대표작은 「풍금소리」일 듯싶다. 필자는 그 수필집이 부쳐져온 직후 읽어서 그에 대한 작가적 인상이 아직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고 평소 몇 분 안되는 일신출신작가로 기억되면서 친근감이 남다른 편이다. 그는 개천예술제 장원의 값을 수필로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평가해 보기도 한다. 그 작품을 대략으로 읽기로 한다.

“지금 우리는 아버지의 백일 탈상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앞서가신 어머니를 따라 마침내 이 세상을 훌훌히 떠나가신 아버지, 그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 세상에서 함께 누렸던 추억을 찾아 나는 지금 이 산골에 와 있다. 어쩌면 부모님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는 이 땅을 거닐어 보고 싶어 차를 돌려 일부러 왔는 지도 모르겠다.

학교 안으로 들어섰다. 방학 탓인지 운동장이며 교실이 텅 비어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우뚝 서 있는 학교 건물, 그러나 옛날의 낯익은 목조 건물이 아니다. 교무실 창문 밖에 매달려 댕그렁 댕그렁 소리를 내던 놋쇠 종이며 우리가 살았던 교장 관사도 보이지 않는다. (중략) 나는 우리집이 서 있었던 자리를 찾아 보았다. 이미 그곳은 돌자갈만이 뒹구는 밋밋한 땅으로 변하여 있고 우리가 가족사진을 찍었던 들찔레 덤불도, 학교로 빠져나가는 사잇문도 그 문앞에 있던 샘터도 보이지 않는다.(중략) 문득 한낮의 고요를 헤치며 소리가 들려왔다. 풍금소리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풍금소리, 아직도 이 학교 풍금이 있다니. 풍금이 그때의 소리를 내고 있다니. 나의 마음은 갑자기 기쁨으로 차오르고 옛 기억의 울안으로 빠져든다. 어머니는 학교가 비어 있는 일요일 같으면 지주 빈 교실에 들어가 풍금을 치셨다. 푸른 다뉴브강이니 사하라사막이니 오동나무 같은 노래를 악보도 없이 치셨다. 우리는 어머니의 풍금소리를 들으면 하던 놀이를 내던지고 달려가곤 했다.…(중략) 나는 한 번도 아버지가 풍금을 치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다만 교실의 창가에 기대서서 보고만 계셨다.

그때 나는 칠판에다 그림을 자주 그렸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너는 다음에 화가가 되어라 하셨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나를 두고 ‘풍각쟁이와 그림쟁이’라 하며 놀려대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 흘러가버린 한바탕 꿈) 이때 오후의 햇살을 받은 새 학교의 창문이 일제히 황금빛으로 반들거린다 낯설고 도도하다….”

이 작품의 주제는 ‘어머니의 풍금소리에 떠오르는 유년의 추억’이다. 오늘 그때의 아버지 100일 탈상 지내고 작가가 남편과 대구 집으로 귀환하는 길에 진주 변방 대곡리 소재 대곡초등학교에 들러 아버지가 교장으로 근무하실 때 그쪽 사택에 살았을 적 유년의 아련한 추억을 되짚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필자는 유달리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작가 정혜옥의 아버지 정학용 교장(진주고등보통학교 초창기 졸업생) 선생이 작품 속에 근사한 아버지 교장으로 출현하기 때문이었다. 그 교장은 진주고등학교 동창회 원로 봉소회 회원이실 때 필자가 『진고 60년사』 주 필진 자격으로 인터뷰를 하여 학교 개교배경과 일제하 학생 동태에 대해 귀중한 자료를 넘겨 주셨다.

제3집에 실린 수필 「모자」는 스위스 여행중 튀쩨른에서 산 ‘모자’에 대한 이야기다. 자주색 리본과 장미꽃 조화 한 송이가 매달려 있는 화려한 여름 모자이다. “나는 그때 앞으로 몇 주일을 두고 계속할 여행을 위해 사치한 치장을 하고 싶은 욕망이 문득 일어났었다”는 것이었다. “어느 이름 모를 소읍, 거친 돌로 지어진 고풍(古風)한 성당에서 마침 거행되고 있던 혼례 미사에서도 초대받은 손님처럼 그 모자를 쓰고 회당의 앞자리에서 신부보다 더 가슴을 울렁이며 앉아 있었다”는 것 아닌가. 정혜옥은 나이가 많이 든 여인이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는 여행지에서 한껏 뽐내며 낭만파다운 마지막 여수를 즐기며 누리며 설레는 양이 문학 안에서 마냥 여왕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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