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허투루 여겨선 안 될 나비 날갯짓 같은 한 표
[경일시론]허투루 여겨선 안 될 나비 날갯짓 같은 한 표
  • 경남일보
  • 승인 2024.03.2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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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정재모 논설위원


지난 21~22일 후보 등록과 함께 막 오른 22대 총선 일정이 진행 중이다. 오늘 재외국민 투표 개시에 이어 자정(28일)부터 2주간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지난 가을부터 불 댕겨진 총선 열기는 벌써 우려될 만큼 과열된 상태다. 그 사이 유권자들은 여야의 격한 막말로 이미 피로감에 젖어 있다. 때문에 본격 선거판은 되레 냉랭해질 수도 있는 선거 혐오 분위기가 저변에 퍼져 있다.

여야가 노랫가락 메기듯 겨끔내기로 연출했던 공천 파열음, 신생 정당이 일으킨 상식 밖 여론조사상의 돌풍, 천박한 언어로 얼룩진 막말 공방…. 이런 행태로 달궈진 총선 열기는 어느새 정치 혐오와 동전의 앞뒷면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모두가 염려해야 할 총선 정국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필경 ‘정치 외면’ 풍조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종편 방송 열심히 듣지만 여야간 공격과 방어 논리가 하도 어금버금해 선악 구분이 어렵다. 구분은커녕 조현증 초기의 일반적 특징이라는 양가감정(兩價感情) 지수만 올라갔다. 기계적 공평함을 내세운 선거보도 프로는 가치판단을 돕지 못하고 더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주변에 선거 보도 방송은 안 보기로 했다는 이가 꽤 많다. 패널들이 상대당 공천 난조에 묘한 웃음을 흘리면서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늘어놓는 통에 혈압이 걱정된다는 거다. 머리에 쥐가 난다는 사람도 보았다. 그만큼 이번 선거판은 사람들 부아를 돋구었다. 진영 가릴 것 없이 널리 형성된 이런 정서는 투표 기피와 정치 외면을 만연케 할 거다. 막 피어난 민주주의의 진전을 멈추게 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우려해야 할 일이다.

선거 때면 늘 동원되는 경구에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이란 말이 있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데는 한 사람 서민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누구나 가진 한 표가 가볍지 않다는 말로 바꿀 수 있겠다. 제 한 표 허투루 해버린들 천하가 망하겠느냐고 생각지 말라는 죽비소리 같기도 하다. 한 표 한 표가 모여 당락 결정짓는 게 선거 아닌가.

이 말을 만든 청나라 사상가 고염무(顧炎武)는 천하와 나라를 구분해 설명했다. 임금의 성씨와 국호가 바뀌는 건 망국(亡國)이요, 도덕과 정의가 막히고 짐승 같은 자들이 사람을 해치는 것이 망천하라 했다. 나라를 지키는 건 위정자의 몫일지라도 천하를 지키는 건 보통 사람들의 임무란 거다. 나라를 지키는 일은 정치꾼들에게 맡겨 두되, 사람이 사람 노릇 하면서 대접 받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소리로 들린다. 2024년 봄에 생각하는 이 말은 ‘꼭 투표하시라’는 말로 새길 수 있으리라.

한 표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잘 알려진 카오스 이론이 떠오른다. 미국 과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한때 기상관측 실험에서 어떤 초깃값으로 0.506127을 입력해 결과를 얻은 뒤 한번 더 확인을 했다. 이 때 그는 처음의 초깃값에서 소수점 이하 넷째부터는 떨어버렸다. 아주 미미한 1만분의 1 이하 값을 생략한 거다. 그랬더니 처음 것과는 생판 엉뚱한 결과가 튀어나왔다. 카오스 이론이다. 이를 설명하면서 아마존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 태풍으로 빌딜히는 격이라 했다. 나비효과라는 용어 유래인데, 복잡한 비선형계(非線形系)에서는 원인값의 미세한 차이가 나중 엄청난 결과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다. 놀라운 인과관계의 경고인 셈이다.

찍은 표든 기권표든 나비의 미미한 날갯짓 같은 내 한 표지만 장래 거센 태풍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무도한 정권 심판’이든 ‘거대 야당의 횡포 심판’이든, 또 다른 무슨 심판이 되었든 투표만은 꼭 할 일이다. 앞으로 2주간 후보들의 공약과 자질 꼼꼼히 살펴야 한다. 정당 이념도 따져볼 일이다. 그런 후 판단 내려뒀다가 투표 날 망설임 없이 한 표 꾸욱 눌러야 한다. 그게 천하흥망 앞에 처한 필부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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