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집 앞에 있는 매화나무에서 봄인 줄 알고 피려다가 갑작스런 추위에 시든 꽃망울을 보았다. 기후변화 때문에 고생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덕을 잘 견디고 활짝 핀 매화에는 꿀벌들이 찾아와 바쁘게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찌든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는 향기도 여전했다. 얼어 죽을지라도 결코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의 그윽한 암향을 맡아보러 산청에 갔다.
먼저 고려 말 문신인 원정공 하즙이 말년인 1370년대에 고향 남사마을에 돌아와서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집에 심은 원정매를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로 알려져 있다. 노목의 원줄기가 너무 쇠하여 더 이상 꽃을 피우지 못하자 옆에 새로운 매화를 심었는데 잘 자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은 원가지 밑동의 곁뿌리에서 새 가지가 돋아 나와서 의젓한 후계목으로 자라고 있다. 그 다음은 남명매를 보러 갔다. 조선시대 선비정신의 표상인 남명 조식이 시천면에 산천재를 짓고, 마당에 손수 심은 매화다. 남명매는 밑에서부터 크게 세 갈래로 갈라진 줄기가 비스듬히 위로 뻗어 있다. 더 눕지 않도록 여러 개의 철사줄로 당기고 있다. 나무의 수령은 460여 년이다. 마지막으로 단성면의 탑동마을에 있는 정당매를 보았다. 고려 말 문신인 통정공 강회백과 통계공 강희중 형제가 소년 시절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심은 정당매다. 등과한 20세 이전으로 보면 1376년 이전에 심은 매화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졌듯이 정당매도 온갖 우여곡절을 겪다가 지금은 4개의 줄기 가운데 3개는 완전히 고사하였고, 나머지 1개의 줄기가 꽃망울을 맺는다. 겨우 대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조식은 하즙, 강회백과는 달리 벼슬을 하지 않고 평생 처사로 살았다. 그는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와 싸우면서 올곧은 선비정신을 보여주었다. 두 개의 쇠방울인 성성자와 작은 단검인 경의검을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다. 산천재 앞마당에 있는 매화나무 주변을 거닐면서 아전들의 횡포를 고발하는 무진봉사의 문장을 다듬었을 것이다. 조선 최고의 직언(直言) 중 하나로 꼽히는 ‘무진봉사’는 임금 이외는 보지 못하도록 봉해진 채로 무진년에 올린 상소이다.
단순히 꽃구경만 해도 재미있는데 오랜 역사와 훌륭한 인물을 만날 수 있으니 1석 3조다. 매화에 스토리가 있으니까 구경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그 지역만의 고유한 관광자원이 더 많이 개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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