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사회
[경일춘추]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사회
  • 경남일보
  • 승인 2024.03.2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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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요 진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정재요 진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MBC경남에서 제작한 화제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어른 김장하’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과거 김장하 장학생으로 선발됐던 진주 명신고교의 한 졸업생이 훗날 학교 설립자인 김장하 선생을 찾아가서 “제가 선생님이 주신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돼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김장하 선생은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며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을 길러내 오히려 장학사업을 한 보람이 느껴진다고 답했다. 필자는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특히나 이 장면이 얼마나 뭉클하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요즈음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로 인한 의료계와 정부 간의 갈등이 심하다. 2000명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해 전국 의대생의 상당수가 휴학 신청했고, 전공의와 의과대학 교수들의 사직도 현실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의 의료시스템이 존속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역할과 본분에 충실을 다하고 있는 ‘평범한 의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의료계와 정부 간의 극심한 갈등 국면 속에서도 의료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평범한 의사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한편, 총선을 앞둔 선거철이다 보니 요즘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치검찰이 장악한 정권 심판론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들려오는 것 같다. 물론 야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일부의 정치검사들이 권력을 장악해 검찰공화국이 돼버린 한국사회의 모습을 떠올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거철 흔히 등장하는 여·야 간의 대립구도와 투쟁담론을 떠나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실제로 공익의 수호자 역할에 충실하며 사회정의를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평범한 검사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논리를 확장해보면 우리사회를 지속·유지·발전시키고 있는 것은 오늘날 회자하고 있는 의사·교수·검사·정치인 등과 같은 특정 직군의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각자의 직역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을 다하고 있는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점에서 필자는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라고 한 김장하 선생의 말씀이야말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한 헌법 제1조 ①항에 대한 가장 간명하고도 깊이 있는 주해(註解)가 아닐까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사회. 이는 곱씹어 보면 볼수록 민주사회의 구성과 운영원리, 그리고 사회 정의론이 지향해야 할 기본적인 방향을 제대로 통찰하고 있는 비범한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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