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의 고민과 인식
88만원 세대의 고민과 인식
  • 경남일보
  • 승인 2013.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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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경남과학기술대 학보사 편집국장)
지난 2007년 ‘88만원 세대’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경제학자 우석훈씨의 저서에 의해 알려진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은 수동적이다 못해 억압적인 초ㆍ중ㆍ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대학입시를 위해 12년간 시험기계와 같은 일정을 참고 견뎠으나 대학 입학 후에는 취업을 위한 과정에 다시 매달리는, 그러고도 고학력 사회에서 졸업장 하나로는 취업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해 스펙(공인자격) 쌓기에 허덕이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20대의 안타까운 실태를 단편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였다.

그리고 2013년,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고 유행처럼 번졌던 88만원 세대라는 이름도 이제는 주변에서 듣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88만원 세대라는 이름과 저자의 책에 담긴 시의성이 무색할 만큼 변한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책에서 예측한 불길하고 비관적인 훗날의 예상들이 미래를 향해 갈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현실화되는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하다. 늘어가는 비정규직과 심각해지는 취업난, 지쳐가는 20대 대학생들과 취업준비생들. 더욱 안타까운 것은 88만원 세대의 용어에 맞춰 불안한 미래가 현실화되는 것과는 달리 그 속에 담긴 해결책은 흐릿해지고 긍정적인 영향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저자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현실에 굴복해버린 20대가 그 심각성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88만원 세대를 필두로 수많은 청년담론 서적들이 출간되었다. 청년카운셀링 열풍이라 할 만큼 20대들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조언과 확신을 얻기 위해 이러한 책들에 매달렸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의 대부분은 기성세대의 시점에서 바라본 청년세대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였다. 학교의 후배나 혹은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선임시절 갓 들어온 신병들의 고민을 상담해준 경험을 통해 그들의 고민이나 생각이 지난날 자신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성세대가 바라본 우리 세대의 문제 역시 그들의 경험에 근거한 조언을 도출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학교생활이나 군 시절의 경험에 기대기에 사회라는 구조는 너무도 복잡하고 거대하다. 그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지극히 논리적이며 옳은 말이다. 그러면서도 애매모호한 위로의 말로 답을 찾는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한다. 희망과 긍정, 세상을 향한 당찬 반란 등의 결론은 앞서 말했듯 각박한 현실에 무감각해진 20대들에게 그저 순간의 깨달음 혹은 언어적 유희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책 속에는 답이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앞서 말한 대로 청년들의 멘토를 자처한 저자들의 노력은 진심이 느껴지는 조언과 위로로 표출되었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 우리 88만원 세대는 우리 세대를 규명하게 된 그 이름에 너무 고착되어 있다. 언제까지 책을 잡고 실천하기 힘든 위로의 말에 기대기보다는 책을 통해 깨달은 현실과 정답이 될 순 없을지라도 교훈이 될 수 있는 단락들을 발판 삼아 자신만의 삶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미 88만원 세대로 굳혀져 버린 세대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훗날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주형 (경남과학기술대 학보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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