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짝사랑
아름다운 짝사랑
  • 경남일보
  • 승인 2013.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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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사람은 나이 먹을수록, 얼굴 전체에 주름이 더해가는 것만큼 느는 것은 오기이며 허세이며, 또한 막무가내인 텅 빈 자존심 그런 것 아닐까? 아니 어쩌면 나이에 걸맞은 값을 하며, 별나지 않아도 자신의 위치에 알맞은 행동을 하며 살겠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자신의 고집스러운 오기에 부채질을 하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누굴 사랑하면 어떻고, 아니 사랑한들 또 달라질게 뭐가 있으랴. 사랑한다 하여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알릴 필요도 없을 것이며, 더구나 그것이 우리의 자존심에 해가 된다면, 나이 값을 위해서도 우리 홀로 삭여 낼 수밖에 달리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진실로 사랑이 순수하다면 더더욱 그러해야 하거늘. 그가 나의 감정을 알든 모르든 그의 어떤 행동에 실망을 하든 말든, 그것은 오르지 나 자신의 감정만의 문제일 뿐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그에게 감정의 표현을 요구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순수한 사랑이 아닐까? 오직 나 혼자만의 사랑이므로 내가 내 자신의 감정조차 그에게 알릴 수 없는 짝사랑이기 때문에 알아주지 않아 아파하면서도 그래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수많은 수식어로 남발한다 한들 어찌 이보다 더 아름다우랴.

때로는 나 자신의 감정을 그가 알아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또 자신의 자존심 간수에 얼마나 다행스러운가라고 생각할 만큼 이기적이고 자학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 모두가 우리의 지독한 열등감이 반작용하는 탓인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이성과 감성이 피 흘려 싸움하던 수년간의 세월 끝에, 결국 세월이 약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기필코 입 밖에 내지 않으리라는 침묵의 세월만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과 그의 이미지가 눈물로 떠오르는 한 그는 나의 그대일 수박에 없다는 진실만을 혼자서도 인정해야만 한다.

결국 우리는 자랑스럽게도 자신을 이겨낸 것이다. 잘 참아냈다는 우리의 가슴에는 그의 이름자를 보아도 흐릿한 눈안개가 내려덮이고, 어쩌다 마주치더라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구경하다가 표정 없이 돌아설 수 있게 되리라. 세월이 더 흘러가면 먼 산 바라보듯 멀뚱히 바라볼 수도 있겠지. 지금껏 감정을 알린 적 없었기 때문에 그저 막연히 느꼈을 뿐인, 느꼈다는 표현조차도 오고간 적 없었음이 자신을 위해서 얼마나 다행스러웠던가를 새삼 감사하고 싶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이겨 냈다는 사실에 대한 깊은 신뢰를 회복한 듯 자랑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단언컨대 기혼자와의 사랑이 어찌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처럼 미화될 수 있으랴. 오직 자신과 맺어준 지금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듯, 그 누구도 배신하지 않고 살고 싶듯이 그도 또한 그러할 것이다. 우리의 이마에 자신의 가족과 맹세가 주름 패여 있듯이. 그의 얼굴에도 젊은 날의 약속이 깊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존중하며 살아야 했고 앞으로도 그러해야 한다. 궁금해 하지 않는 침묵은 계속 되어야 하며, 계속되는 우리의 침묵 속에서만이 짝사랑은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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