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환 변호사의 법률이야기
노경환 변호사의 법률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4.01.0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변호인’의 옥에 티(?)
최근 송강호 주연의 ‘변호인’이란 영화를 보았다. 필자는 변호사라는 직업상 법정영화가 나오면 빠짐없이 보는 편인데, 매번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점은 영화가 실제 법정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률의 문외한인 일반인들이 실제 재판도 영화처럼 진행되고 있다고 오해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나름 파악한 이 영화의 ‘옥에 티’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형사사건에서 검찰에 의해서 기소된 사람은 ‘피고인’이라고 호칭하지 ‘피고’라고 하지 않는다. 피고는 민사소송에서 원고에 의해서 의무를 이행할 자로 지정된 상대방을 말하는 호칭이다.

둘째, 재판장이 사건번호를 호명하고 부산지방법원 ‘형사제○부’ 재판을 개정하겠다고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판사 1인이 재판하는 경우이므로 ‘형사○단독’이라고 칭함이 옳다. 즉, 형사제○부와 같은 호칭은 판사 3명(재판장, 좌배석, 우배석)이 재판하는 ‘합의부’를 일컫는 용어로 영화와 같이 판사가 단독으로 재판함에도 형사○부로 칭함은 잘못된 것이다.

셋째 재판장이 법정에서 피고인이나 변호인, 방청객을 향해서 반말을 하는 것이 자주 나오나, 법정에서는 경어(敬語)를 사용하게 되어 있고, 반말을 하지 않는다.

만약 영화에서와 같이 판사가 변호사나 방청객한테 반말을 했다가는 시쳇말로 ‘막말 판사’로 언론의 호된 곤혹을 치르게 될 것이다.

넷째 변호인이 재판장이 증인신청을 받아주지 않을까 염려해 재판장의 집 앞에서 증인신청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도 현실과는 맞지 않는 장면이다.

증거신청은 공판기일에서 법정에서 신청하게 되어 있고,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재판장이 이를 채택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재판장이 합리적 이유가 있는 변호인측의 증인신청을 채택하지 않고, 그대로 판결을 선고한다면 ‘심리미진(審理未盡, 재판에 필요한 증거조사를 다하지 않음)’의 위법한 재판을 한 것이 되어 상소심에서 파기될 수 있다.

특히 영화에서와 같이 변호인측이 고문에 의한 자백으로 수사기관에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나 진술서의 증거능력을 강력하게 다투는 경우라면, 군의관을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을 판사는 아마 없을 것 같다.

다섯째, 재판장이 속기사에게 군의관의 증언을 기록한 속기록을 삭제할 것을 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도 현실과는 맞지 않다.

군의관이 정당하게 휴가나 외출을 받아 증언했든 군무이탈 상태에서 증언을 했든 증거능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므로, 재판장이 증인이 군무이탈 상태에서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이미 속기한 증인신문조서를 삭제할 것을 명할 수도 없다.

끝으로, 판사와 검사, 변호인측이 사전에 합의해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되, 2년이 경과하면 가석방을 해 주겠다고 약속한 듯한 장면이 나오는데 이도명백히 잘못된 장면이다. 판결선고 전 법원과 검찰, 변호인이 양형에 대해 서로 조율을 할 수 없고, 이는 3권 분립에도 위배되며, 재판의 주문(양형)은 철저한 보안사항으로 사전에 알 수도 없다.

재판의 실체적인 면으로 가서, 영화에서와 같이 피고인들이 불법구금, 고문 등과 같은 위법한 수사절차에 의해 의사에 반하는 자백을 했고, 이를 인정할 정황증거와 군의관의 양심선언까지 있었다면, 아무리 권위주의 시절의 재판이었다고 하더라도 재판장이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을 것 같다.

이러한 몇 가지 ‘옥에 티(?)’가 있다 하더라도, 이 영화는 이를 상쇄할 엄청난 함의(含意)를 담고 있다. 아무리 범죄혐의가 있는 피의자라고 하더라도 적법한 절차에 따른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가권력’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E H 카(1892~1982)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고, 불행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않으면 다시 불행한 역사를 반복할 수 있다’고 역설했듯, 과거 권위주의 시절과 같이 구타와 고문이 자행되고,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마저 개인의 인권을 지켜주지 못하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변호사 노경환 법률사무소

변호인
변호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정만석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