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7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7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2.1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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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1. 이광악나무
조선군들이 입을 모아 싸움은 다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왜군은 조총을 난사하며 공성에 나섰고, 조선군은 절명 지경에 이른 목사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이제 누구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악전고투만이 있을 뿐.

가지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잎도 그만 힘이 빠진 듯 손을 놓아버렸다. 세찬 바람은 성 안으로 불었다가 성 밖으로 불었다가 하늘로 치솟았다가 제멋대로였다. 마치 광녀 도원 처녀의 검정치마가 펄럭거리면서 내는 바람 같았다.

온 세상에 피비린내를 진동케 하는 인간들 전쟁에 신도 진노한 것일까? 해가 뜨는가 했더니 홀연 암운이 하늘을 뒤덮었다. 뒤이어 천둥소리가 나며 비가 쏟아지고, 천지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해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피아의 인마(人馬), 총성, 호각소리만 요란하였다.

4경(오전 1시)부터 시작된 전투가 진시(辰時, 오전7시∼9시)를 지나 사시(巳時, 오전9시∼11시)까지 이어졌을 때였다. 별안간 적진의 막사 쪽에서 불길이 확 치솟더니, 그것이 신호인 듯 비로소 왜군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수성군은 기뻐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악귀같이 달라붙던 왜군이었다.

그때 군사 하나가 이광악이 몸을 의지하여 싸웠던 큰 느티나무를 가리키며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앞으로 저 나무를‘이광악나무’라고 부릅시다.”

그러자 모두 좋다고 힘차게 손뼉을 쳤다. 이광악나무-그 이름은 먼 후세에까지 그대로 전해지게 된다.

그런데 왜군이 물러가면서도 하는 짓이 또 더없이 가증스럽고 음흉했다. 전우의 시체를 촌락으로 끌고 가서 불을 태웠고 잿가루가 사방팔방 날리었다. 그래서 조선군이 왜군 머리를 벤 것은 겨우 30여 급에 불과했다. 그들은 전사자 수가 조금이라도 더 적은 것처럼 위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저들 말로 ‘머리만 감추고 엉덩이는 감추지 않는’ 격이었다. 왜군이 물러난 후에 보니 여염집에는 불에 탄 송장 뼈가 곳곳에 쌓였다.

“왜놈 장수들도 엄청 많이 죽었을 게야. 그놈들이 왜장 시체를 농이나 자루에 넣어 떠메고 가는데, 그게 하나 둘이 아니더라고.”

“소와 말도 모조리 버려둔 채 그냥 도망친 걸 보면, 그놈들 어지간히 혼겁이 났던 모양이야.”

“그것도 그렇지만, 우리 조선 포로들을 그대로 살려놓고 도주했잖아? 그 독하고 악랄한 왜구들이 말이야.”

그러나 조선군에게 퍽 아쉽고 억울한 게, 전의를 상실하고 도주하는 적을 섬멸할 수 있는 대규모 추격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목사가 총알을 맞고 드러누운 데다가, 장졸 모두 힘이 다하고 원병이 더 없었던 게 그 원인이긴 했지만. 그나마 일부 병력이 소촌역까지 진격하여 왜군 머리 30여 수(首)를 베었다는 게 조금은 분을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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