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윤위식의 기행
윤위식의 발길 닿는대로 (63) 영암사지를 찾아서천년사찰의 흔적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2.24  22:05:13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 영암사지

 

숨 가쁘게 내달리던 청마는 저녁노을 불게 타는 영마루에 올라서서 회안에 젖은 눈시울로 말없이 뒤돌아보더니만 멀리 떠나갔다. 미처 피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들을 밟지만 않았어도 휘날리는 말총은 분면 광영이었을 것인데 보내면서도 두 손 흔들지 못하는 가슴 아픈 사연이 유난히도 많았던 한 해여서 을미년 새해맞이를 하면서는 이제는 제발 원통한 일만은 없게 해 달라고 천지신명께도, 일월성신께도 간절히 빌었다. 갖으려는 욕망의 기도가 아니라 마음을 닦는 기도를 하라는 황매산 황룡사의 비구니 노스님의 말씀이 불현듯 생각나서 그간의 안부도 궁금하고 새해의 화두도 듣고 인접한 영암사지도 찾아볼 겸 길을 나섰다.

합천군 가회면 소재지에서 영암사지와 모산재의 표지판을 따라 가회중학교 앞을 지나 작은 고갯길을 넘어서면 마주하는 산세가 갑자기 별천지로 변한다. 야트막하고 두루뭉술한 지금까지의 산과는 달리 깎아지른 절벽이 하늘의 끝을 병풍처럼 막아서며 기암괴석들은 검푸른 소나무를 듬성듬성 깃발처럼 곧추세우고 결전장을 향한 출정식이라도 하는 듯이 위풍당당하게 결의에 찬 모습으로 빼곡하게 도열했다. 대기저수지 둑에 마주서서 ‘전체 차려!’ 하고 구령이라도 냅다 지르면 지축을 뒤흔드는 군장소리를 내면서 일사분란하게 부동자세를 취할 것만 같다.

60번 도로를 따라서 대기마을 앞을 지나 꼬부장한 고갯길을 돌아서 오르면 모산재 주차장이 마련돼 있고 마주한 매점 앞의 갈림길에는 영암사지와 모산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섰다. 황룡사나 영암사지까지는 6~700m에 불과하지만 비스듬한 산길의 초입에는 네댓 집이 이루는 마을 안길이라서 승용차의 교행도 안 되는 좁은 골목길로 굽어있어 예감이 들어맞지 않으면 어느 한쪽은 한참을 후진해야 하는데 주차장이 마련된 작은 화장실 앞에서 솔숲이 우거진 황룡사로 들어가는 샛길까지 용케도 차를 몰았다.


 

   
▲ 모산재 가는길


완만한 경사의 시멘트 길을 200m쯤 가다보면 철책으로 된 커다란 쌍바라지의 철문이 활짝 열려 있다. 철문 안으로 자그마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는데 진잎이 된 노란 잔디가 흠집 하나 없이 융단같이 정갈하게 깔린 것으로 보아 차량의 내왕이 없었음을 일러준다. 방석때기마한 자연석의 층층돌계단이 꽤나 높은 석축으로 이어진 위로 좁다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작은 요사채가 자리를 잡았고 또 하나의 석축위로 대웅전이 자리를 잡고 내려다보는데 그 크기가 여느 절집의 산신각보다 작으면서 정면 삼간에 팔작지붕으로 단아한 기품으로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 위압적이 않고 온화하여 정겨움이 넘쳐난다. 뒷산 모산재의 기암괴석들은 거북인지 자란지 목만 내민 녀석이 있는가 하면 곰 같기도 하고 사자나 호랑이 같기도 한 온갖 형상의 바위들이 소인국의 모형 같은 작은 절집을 병풍처럼 둘러싸서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지켜보며 내려다보고 있다. 심산절집에 무슨 해코지를 할까 만은 ‘칵!’하고 주먹이라도 내밀며 견주기라도 한다면 일순간에 뛰어 내려 덮칠 것만 같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서니 단출하기 그지없다. 닫집도 없이 협시불도 없는 관음보살좌상은 신중탱화와 산신탱화를 옆에 두고 향로촛대에 다기 한 점이 불단세간의 전부이고, 벽면에 장대를 매달아 고이 접어 걸쳐놓은 가사장삼이 실내장식을 대신하는데 비구니스님이라선지 거울 하나가 걸려있다. 절집마다 빼곡한 연등도 하나 없는 텅 빈 천정은 물욕을 건너뛴 사바세계의 저편일까 향불의 연기만 가늘게 타 오른다.

요사채로 들어서자 주방을 겸한 널따란 거실이 꾸밈없이 정갈하여 스님의 성품을 일러주는데 계룡산 동학사에서 삭발하고 올해로 팔십팔세의 미수를 맞으니 법랍 62세인 진성스님은 황룡사를 세운인지도 30년의 세월이란다. “청춘의 꿈도 접고 젊음의 뜻도 접고 속세와 절연하고 일생을 오롯이 삼보에 귀의했으니 무엇을 남기고 가시렵니까?” 했더니 “누더기 한 벌 남기고 떠나면 중노릇 잘 한 게지” 하신다, 시봉을 들어 줄 상자가 있어야 되지 않겠냐고 걱정을 할라치면 “호사를 바라면 중노릇을 말아야지”로 똑 같은 답이라서 생뚱맞은 질문을 더러 하는 터이라서 “기도를 해도 부처님이 소원을 잘 들어 주지 않는데요?” 하고 뜬금없는 질문을 했더니 탐하는 기도를 말고 마음을 닦는 기도를 하라시며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라 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가 되고 백년을 탐낸 재물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된다네.” 하시며 창밖의 먼 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얼굴은 티 없이 맑고 밝지만 골 깊은 주름살과 좁아진 어깨는 장삼마저 헐렁하여 미수의 노구가 더욱 안심찮다.

황룡사를 나와 영암사지로 가는 길로 작은 모롱이를 돌아들자 모산재 1.3km라는 등산로 표지판이 작은 도랑을 끼고 오르라고 일러준다.

점심때도 이른데다 김밥까지 한 줄 챙겼으니 이참에 모산재까지 올라갈까하고 솔숲이 울창하고 솔가리가 수북하게 깔린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랐다.

두루뭉술한 바위들이 여기저기서 띄엄띄엄 보이기 시작하더니 숨이 가쁘기 시작 할 무렵에는 한층 덩치가 더 커진 바위들이 넙죽넙죽 엎치기도 하고 펑퍼짐한 등짝을 내놓고 돌아앉은 바위하며 남산만한 배를 안고 벌러덩 누어버린 무례한 녀석까지 엎어지고 자빠져서 흙 한 줌 없이 거석들만 뒤엉킨 바위산이다. 틈새마다 뿌리를 박은 소나무들이 앵돌아지고 뒤틀려서 껍질의 굳은살이 울퉁불퉁 앙살궂어 삶의 고단함이 역력하건만 발 디딜 곳이 마땅찮은 곳마다 뒤틀린 뿌리를 발판으로 내 놓아 하얀 속살까지 들어났으니 깊은 속내가 고맙기 그지없다.

경사가 급한 곳 마다 받줄이 드리워져서 반이나 올랐을까 하는데 바위틈사이로 이어지는 길이 온통 빙판으로 얼어붙어 장비도 없이 오르기에는 무리라서 산행을 멈추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아찔한 낭떠러지의 좁다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모산재의 주능선과 마주했다.

금강산의 만물상을 옮겨온 것일까. 만폭동을 그린 열두 폭의 병풍을 펼친 것일까. 회색빛깔의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몸집의 굵기와 높이가 다를 뿐 하나같이 하늘을 향하여 꼿꼿하게 서있는 모양새가 임진란의 승병들이 창검을 들고 도열한 것 같기도 한데 수직의 석벽이 아기자기한 형상으로 장관을 이루어 비경이요 절경인데 코앞에서 마주하니 웅장하고 장엄하다.

아쉬움을 달라며 왔던 길로 되돌아서 천년의 숨결이 곤이 잠든 영암사지로 찾아들었다.

황매산 끝자락을 겹겹으로 끌어다가 이모저모 접어 올려 연화좌대 높게 깔고, 모산재 기암괴석 불보살을 아로새겨 중천에 드높이 후불탱화 걸어두고, 입석거암 우쭐우쭐 금강역사 앞세우고 몽실한 바윗돌로 오백나한 거느리며, 봉마다 거암거석 십대제왕 앉았으니 첩첩산중영암사지 대가람의 불국정토, 수미단을 점지하고 황매산이 품었구나.

십여 단씩으로 쌓아 올린 화강석 축대들은 두부모를 자른 듯이 반듯반듯한데 간간이 무너짐을 방지하려고 거멀장의 돌을 끼워서 천년세월을 오롯이 이어오는데 홀로 선 석탑과 쌍사자석등이 옛 세월을 그리며 서로를 달랜다. 천공의 절대 명당인 금당의 옛 터에는 좌우로 커다란 귀부인 돌 거북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머리를 하고 보물 제489호로 온전하게 남았는데 짊어졌던 석비는 간 곳을 모른다. 인접하여 근작의 영암사가 자리를 잡았으나 뒷발로 마주선 두 마리의 사자는 안간힘을 다하여 석등을 치받들고 천년을 버티면서 사바세계를 밝힐 촛불이 다시 켜지기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 황룡사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