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윤위식의 기행
윤위식의 발길 닿는대로 (73) 일원정 가는 길조선 초기 문신 김숙자 선생 사당 찾아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10.29  21:30:31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아침저녁이 서늘해지니까 가을이 잰걸음으로 다가온다.

지나간 나날이 자꾸만 뒤돌아 보이는 사색의 계절이라선지 선현들이 머물다 간 자리에 아직은 온기가 남아있을 것 같아 길을 나섰다.

야은 길재의 제자이고 김종직의 아버지로 정몽주, 길재,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과 조광조에 이르기까지 사림파의 적통을 이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이신 강호산인 김숙자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일원정’과 사당이 있는 거창으로 길머리를 잡았다.

35번 고속도로 산청 요금소를 나와 산청읍을 관통하여 59번 도로를 따라 달임재를 넘어서 메뚜기가 다랑논을 뛰 다니는 차황을 벗어나 신원면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접어들자 시골버스 정류장이 마을은 깊은 골 어딘가에 깊숙이 감춰두고 홀로 나와 반기는데 어쩌다 건너다 보이는 마을도 첩첩산중 오지이다.

소룡고개를 넘어서자 바랑산 굽어보는 월여산 자락에 역사 앞에 통곡하는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아직도 못다 푼 한이 응어리로 남아있는 얼룩진 역사의 현장인 ‘거창양민학살사건 추모공원’이 널따랗게 자리를 잡고 개방형인 솟을삼문인 ‘추모문’이 길게 늘어졌다.

안으로는 일상의 공간과 성역을 가르는 ‘천유문’이 좌우 협문을 두고 가운데 문은 닫혀있고 언덕 위로의 ‘위패봉안각’은 진한 단청이 숙연함을 더하는데 옆으로는 희생자 묘역이 마련되어 이제야 까만 빗돌에 하얗게 이름을 새기고 종횡으로 가지런히 줄을 지었다.

서너 기의 묘비를 읽고는 가슴이 먹먹하여 더는 읽을 수가 없었다.

 
   
▲ 추모공원 정문


- 여기 이 사람들-
누가 모르시나요.
총 맞고 누운 여기 이 사람들.
누가 못 보셨나요.
총 맞고 묻혀버린 여기 이 사람들.
누가 아시나요.
역사가 외면했던 여기 이 사람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여기 이 사람들.

누가 이 사연을 아시나요.
돌 지난 병일이도 또래인 점생이도 총을 맞고 누었고,
첫돌 앞둔 일순이가 총을 맞고 불태워진 이 사연을 아시나요.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칠백열아홉의 여기 이 사람들.


마을의 장정들은 6·25의 전장에서 구국의 피를 흐리고 있을 때에 남아 있던 노인들과 아녀자와 밤톨만한 주먹을 빨며 옹알이를 하던 젖먹이에까지 총질을 한 기막힌 사건이다. 얼마간을 섰을까. 하늘은 멀쩡한데 두 눈에는 무지개가 어른거렸다. 억장이 무너지는 긴 한숨의 꼬리 끝을 남겨두고 발길을 돌렸다. 계곡 가엔 갈꽃피고 둔덕에는 억새 피고, 길섶의 코스모스 더 없이 한가롭고, 산기슭 저 만치에는 들국화도 피었건만, 짓누르는 가슴은 천근이고 만근이다.

천천히 차를 몰아 신원면 사무소 앞을 지나 과정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했더니 감악산과 월여산의 자락이 맞모아진 계곡에는 반석을 깔고 흐르는 물이 무거웠던 마음을 소리 내어 달래 준다. 물 맑은 계곡은 누구의 소작이며, 평평한 반석들은 누구의 작품이며, 나뉘어서 드높은 산은 누구의 기상일까. 천국의 들머릴까 선경의 초입일까 드높은 벼랑위로 용틀임을 한 우람한 노송 한 그루가 승천을 잠시 멈추고 굽어보는데 벼랑 끝에 가려진 정자는 추녀 끝을 내밀어 드높은 창공의 뜬구름을 가리킨다.

 
   
▲ 소진정



배롱나무의 영접을 받으며 정자로 올랐다. 울도 담도 없는 ‘임청정’이 ‘우천서사’라는 또 다른 편액을 달고 고즈넉이 앉았는데 옆으로 난 돌계단 위의 ‘승훈재’ 왼편으로 또 하나의 정자가 있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옛 내음이 물씬 나는 ‘소진정’이 남명조식 선생께서 목욕을 즐기시며 시를 짓던 ‘가마소’가 있는 벼랑아래의 계곡을 하염없이 굽어보며 옛 추억에 젖어 있다. 남명의 제자인 홍문관 저작 도희령선생을 기리고자 후손이 세운 두 정자는 삼간겹집의 팔작지붕에 방 두개씩에다 대청마루에 난간을 두르고 깎아지른 비경의 ‘포연대’ 벼랑 끝에 그린 듯이 앉자있어 세상사를 멀리한 더 없는 절경이다.

난간에 앉으니 굽이진 계곡길이 한 폭의 그림이다.

계곡길을 따라서 천천히 차를 몰아 해발 450m의 굽이굽이 길고 긴 밤티재를 넘어서 ‘일원정’에 닿았다.

성리학의 대가 강호 김숙자 선생의 유훈을 기리고자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강호 김숙자, 점필재 김종직,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정암 조광조 등 7현을 배향한 서원을 겸한 ‘일원정’은 ‘강호정사’라는 또 다른 편액이 걸려 정자라기보다는 지체 높은 사대부가의 고택 같은 웅장한 건물인데 아래채와 대문간이 전부이지만 시간이 멈춰버린 옛 세월을 오롯이 품고 있어 온고지정이 새삼스레 따사롭다.

길 건너에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 선생의 신도비각이 익공의 조각이 정교하고 웅장하여 감탄이 절로 나는데 벼랑아래의 황강에는 해오라기가 바윗돌에 앉아서 물고기를 낚아채느라 여념이 없다.

풍광에 빠져들어 돌이 되기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선생의 사당을 찾아서 인접한 대산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이내 사당에 닿았다. 정면 5칸의 솟을대문인 ‘명성문’을 들어서자 정당인 ‘추원당’은 5칸 겹집으로 덩그런 누마루와 계자난간에 아름드리 기둥으로 외양이 웅장한데 뒤로는 화려하게 단청을 입힌 사당이 근엄하신 선생의 풍모일까 엄숙함을 자아낸다. 문이 잠겨 있어 목례로서 예를 가름하고 돌아서자 노거수인 은행나무위로 백로 한 마리가 하늘을 가로 질러 어디론지 날아간다.

 

   
▲ 포연대와 노송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