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손목부상 딛고 언더에서 꽃핀 밴드
치명적 손목부상 딛고 언더에서 꽃핀 밴드
  • 연합뉴스
  • 승인 2015.12.2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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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로열파일럿츠, 새 앨범 3.3 발매
밴드 로열파이럿츠(RP)가 딛고 선 지점은 독특하다. 주류 기획사가 구성한 밴드도 아니고, 국내 인디 음악계를 거치지도 않았다. 대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돼 수년간 현지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했고, 이들이 유튜브에 올린 뮤즈·브리트니 스피어스·원더걸스 등의 커버 영상이 주목받으며 국내 기획사의 눈에 들었다.

 밴드 경력만 10여 년인 기타 겸 보컬 문킴(27), 12살 때부터 드럼을 친 액시(26), 13년간 베이스를 잡은 제임스리(27) 등 미국에서 온 ’록키드‘로 구성됐다.

 이들에게 가요계가 굴러가는 풍경은 좀 낯설었을 듯싶다. 가수는 뮤지션에 앞서 연예인으로 분류되고, 주류 음악 방송에선 ‘핸드싱크’를 해야 하며, 연주 실력만큼 다재다능한 ‘끼’가 필수여야 하니 말이다.

 “전 꿈이 프로 드러머여서 솔직히 정체성에 혼란이 좀 오기는 했어요. 하하.”(액시)

 최근 강남구 논현동의 소속사 사무실에서 RP를 만났다.

 지난 2013년 8월 첫 앨범 ‘샤우트 아웃(Shout Out)’으로 데뷔한 밴드는 전반적으로 순탄하게 활동했다. 유머를 조금 보태 “미국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제임스리가 한국어가 서툴러 이곳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던 것” 빼고는.

 악재는 올여름 찾아왔다. 이달 발표한 앨범 ‘3.3’의 한 곡을 녹음한 직후였다. 제임스리가 이태원의 한 레스토랑에서 넘어지는 철문에 깔려 왼쪽 손목이 절단될 뻔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것. 베이스 연주자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왼쪽 손목을 죽 둘러 꿰맨 자국이 선명한 제임스리는 “신경이 거의 죽어 절단을 권유하는 의사도 있었다”며 “손목 수술을 받은 뒤 매일 재활을 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통증은 여전히 힘들다. 기다릴 두 멤버에게 미안해 나를 빼고 팀을 꾸리라고 했지만 멤버들이 기다리겠다며 용기를 줬다. 계속 우울하면 진짜 지옥밖에 없어 매일 긍정적으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1년가량 앨범 공백으로 서로에게 멀어지고 음악적인 의욕도 시들해진 멤버들은 이 사고를 계기로 똘똘 뭉치게 됐다. 문킴은 “제임스가 노력을 많이 했다.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했고 우리도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제임스리에게 다른 포지션을 권유한 건 이번 앨범 프로듀서로 가세한 그룹 솔리드 출신 정재윤이었다.

 자리에 동석한 정재윤은 “제임스가 취미로 키보드를 친 걸 알고 키보드와 미디 프로그래밍으로 역할을 바꿨다”며 “그전까지 기타, 드럼, 베이스 사운드의 록에서 EDM(일렉트로닉댄스뮤직)을 접목하는 등 장르가 풍성해졌다”고 설명했다.

 길을 제시한 정재윤 덕에 멤버들은 ‘오픈 마인드’가 됐고 음악은 한층 자유로워졌다.

 “제임스의 신시사이저 덕에 어떤 스타일의 곡을 해도 어울리게 됐어요. 사실 밴드 색깔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정재윤 PD님이 아이디어를 잘 포용해주셔서 장르가 확장해도 기타 톤, 드럼 소스 등에서 전체적으로 통용되는 우리 색깔이 생겼어요.”(문킴, 액시)

 제임스리는 “악기 포지션 변화도 중요하지만 결국 우린 이 과정에서 자유를 얻었다”고 거들었다.

 심리적인 변화도 음악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타이틀곡 ‘런 어웨이(Run Away)’는 가장 마지막에 완성한 곡이다. 힘들어 도망가고 싶던 스트레스를 확 푸는 차원에서 쓴 곡이라고 한다. 거칠게 내려치는 액시의 드럼 비트와 대중적인 후렴구가 인상적인 곡으로 촘촘한 리듬 배열에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녹아들었다.

 뒤이은 트랙 ‘데인저러스(Dangerous)’도 ‘징징징징~’ 대는 일렉 기타 리프가 증폭된 빠른 템포의 록으로 역시 일렉트로닉 요소가 가미됐다. 이 곡 역시 스트레스를 분출하듯 귀에 때려 박는 록 사운드가 시원하다.

 그러나 더 앞서 만든 ‘위드아웃 유(Without You)’에선 이별이란 메타포를 통해 바닥까지 내려간 심경을 이야기한다. ‘어디로, 어디로 가는지/ 이대로, 이대로 끝인지/ 다 떠나고 나만 남아/ 지겨워 모든 게 다 지쳐~.’

 이 앨범은 싱가포르 아이튠스 록차트 1위를 비롯해 대만 6위, 미국 33위 등 해외 아이튠스 록차트에서 순항 중이다.

 멤버들은 이번 작업을 통해 소중한 인연인 서로의 마음을 다시 살피고, 한국에서 음악 하는 의지를 새롭게 다진 듯 보였다.

 1999년 각각 부모 손에 이끌려 이민을 간 문킴과 액시,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제임스리의 인연은 RP가 결성된 2009년부터다. 함께 첫 곡을 만든 게 그해 8월이었다. 그러나 문킴과 액시는 문킴의 친형과 함께 2004년 밴드 ‘FFD’를 결성해 활동했고, 제임스리는 로스앤젤레스 도시 이름을 딴 메탈밴드 ‘아주사(Azusa)’로 활동해 이들은 같은 언더그라운드 무대에 서곤 했다.

 문킴은 “베이스를 치던 친형이 2008년 아이스링크에 스케이트를 타러 가던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며 “형과 마지막 공연이 자폐아를 위한 자선 이벤트였다. 한동안 밴드 활동을 멈췄다가 친구 소개로 제임스를 만났는데 제임스도 당시 이 무대에 선 걸 알았다. 그러니 운명 같은 인연”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국내 기획사 제안에 고민한 제임스리는 때마침 문킴이 가족과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자 함께 음악하고 싶어 한국행을 택한 케이스. 당시 그는 교수를 목표로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었고 한국은 친척집에 한두 번 와 본 게 전부였다. 

 그는 “문킴이 ‘고향이 한국이니 홈그라운드에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며 “처음엔 당황했지만 함께 음악 하는 게 재미있었고 한국에 오면 부모님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을 알면서 부모님과 사랑이 깊어졌고 ‘베스트 프렌드’가 됐다”고 웃었다.

 멤버들에겐 오래된 막연한 꿈이 있다.

 “우리가 스타디움에서 공연하고 사람들이 이름을 연호하는 막연한 꿈이 있어요. 뭔지 모를 우리만의 확신이 있죠. 지금은 그 꿈을 현실로 만들고자 고군분투하는 과정입니다.”(문킴)

연합뉴스



 
밴드 RP(왼쪽부터 제임스리, 문킴, 액시) 애플오브디아이 제공
밴드 RP(왼쪽부터 문킴, 액시, 제임스리) 애플오브디아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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