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영화 ‘귀향(鬼鄕)’을 보고
[여성칼럼] 영화 ‘귀향(鬼鄕)’을 보고
  • 경남일보
  • 승인 2016.03.1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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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 (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과 삶을 다룬 영화 ‘귀향’을 보았다. 수없이 많은 대목에서 가슴을 치받고 올라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영화 제목을 자세히 보니 ‘돌아올 귀’자의 귀향(歸鄕)이 아니라 ‘귀신 귀’자의 귀향(鬼鄕)이다. 이 제목에는 일본군의 만행으로 고통 속에서 숨져간 분들이 많다는 뜻이, 그리고 그분들이 고통을 받은 시점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서, 그 지옥 속에서 살아남으신 분들도 한 분 두 분 세상을 뜨셔서 살아서 돌아오시기 어렵다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넋이라도 고향에 돌아오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제목일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귀향을 위해 수많은 나비들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우리의 산천을 따라 날아오는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하기도 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도 했지만, 정작 영화가 끝나고도 울음을 멈추지 못했던 것은 그분들이 지금 고향으로, 대한민국으로 돌아오신다고 하더라도 그분들의 넋이, 마음이 편치 않으실 거라는 생각에 죄스럽기만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8일,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나 배상도 받지 못하고,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덜컥 합의해버린 이 정부 하에서 그분들이 돌아오신다고 한들 한 맺힌 마음이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이라도 풀어질 것이며, 내 고향에 왔다고 마냥 마음이 편안하실 것인지, 자신이 없다. 오히려 12.28 합의 직후 수요집회에서 터져나왔던 할머니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는 그분들이 여전히 고통 속에 있음을, 지금 우리 사회가 그분들의 맺힌 한이 풀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12.28 합의 후 일본정부의 고위관료들은 더 당당하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발언을 이어갔고, 우리 정부는 합의를 충실히 지키려는 듯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거나 합의를 변명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가장 단적인 예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의 외무장관 연설에서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 것이나,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에서 합의를 이뤄냈다는 자화자찬으로만 이 문제를 다룬 것이다.

이러한 양국 정부의 행태는 급기야 지난 7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로부터 피해자를 중심에 두고 이 문제에 접근하라는 지적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를 보면서 이 합의의 파기를 요구하고 일본에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노력을 노구의 할머니들과 정신대대책협의회에만 맡겨두고 나는 모르쇠 하고 있어도 될까, 그래서는 안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착잡했다.

그러던 차에 진주에서도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일본군‘위안부’ 피해할머니 진주기림사업회가 결성돼 활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올해 초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 사업회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12.28 합의의 부당성을 알리고 합의의 파기를 촉구하는 운동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진주시민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도록 진주시내에 소녀상을 건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기획한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옆자리에 슬며시 끼어들었다. 작은 힘일지라도 이 문제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귀향’을 보고난 지금, 그분들에 대한 죄스러움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그분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그리고 지금이라도 그분들에게 안식을 드리고 그 넋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욱 커져만 간다.
 
강문순 (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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