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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페이지] 소녀와 할머니 (1)첫번째 이야기, 작가를 만나다
김지원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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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2  06: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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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서경·김운성 작가.
글싣는 순서 [1]소녀 [2]할머니 [3]희움 [4]나옥분 [5]아직도… [6]뱃지 [7]기억해
 
통영, 거제, 남해, 창원, 진주, 부산과 울산까지 경남 인근의 소녀상을 찾아가는 길 안내 페이지를 마련했다. 우리 곁의 소녀상을 만나 역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월이 약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 부른다. 2016년 12월30일, 한 명의 피해 생존자가 등록신청을 했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239명. 그 중 대부분의 희생자가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약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진심어린 사과는 없었고 가해 당사국 정부차원의 배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세월 앞에 피해 생존자들의 생애만 마침표를 찍을 뿐이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인회관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미국 내에서 4번째로 세워진 ‘소녀상’이다. 국내에는 1997년 경기도 나눔의 집에 처음 세워진 후 2011년 일본 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집회 현장인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하게 됐다. 이후 전국의 지자체 및 시민사회단체, 학생, 개인들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기념비 설치작업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창간 108주년을 맞는 경남일보는 경남과 부산·울산지역의 소녀상을 지면으로 찾아간다. 뉴스로 접하는 수요집회, 새로 세워진 소녀상,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별세 소식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반 상식의 전부라면 잊지말아야 할 역사를 찾아 한걸음 나서보자.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은 아픈 역사를 담은 우리 곁의 ‘소녀상들’이 있다.

2015년 12월28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 이후 기림 조형물 설치작업은 한층 뜨겁게 불타 올랐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오랜 투쟁이 요구하는 사안과 동떨어진 협상은 국민 공감대를 얻는데 실패했다. 협상의 이면에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이전 이라는 선제조건이 있다는 일본발 보도는 그해 마지막 수요집회 이후 소녀상을 지키려는 대학생들의 투쟁으로 이어졌다. 한겨울 소녀상을 지키겠다며 노숙하는 학생들에게 보낸 소환장 소동에 또 한번 시민사회가 들끓어 오르기도 했다. 지금도 일본대사관 앞에는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이 한뎃잠을 잔다. 부산에서는 설치된 소녀상을 구청에서 들어냈다가 다시 설치하는 헤프닝도 빚었다. 해를 두 번 넘기고, 정권이 바뀌었지만 협상의 후유증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해 2015년은 광복 70주년 이었다. 서울에서 만난 김운성·김서경 작가는 “광복 70주년이라 그해에 소녀상 설치작업이 많이 진행됐다. 그래서 다음해엔 좀 쉬겠구나 했는데 12월에 그 협상이 이뤄졌다”고 회상했다. 2015년 27개의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됐고, 2016년에도 24개가 설치됐다. 경남지역에는 자치단체, 시민단체에서 추진한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림상이 모두 5곳이 있다. 개인이 설치한 곳이 1곳 있고, 학생들이 주도해 학교내에 설치한 곳도 4곳이 있다.

김서경·운성 작가 부부의 ‘평화의 소녀상’은 서울 일본대사관과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김 부부작가는 똑같은 모양의 ‘평화의 소녀상’ 외에도 각 지역의 설립주체와 교류를 통해 지역의 요구를 반영한 ‘소녀상’도 선보였다. 지역의 시민단체와 처음 작업한 곳이 바로 경남 거제였다. 김운성 작가는 “거제는 장소도 너무 좋았다. 일본을 향해 바다를 바라보며 응시하는 것도 좋고,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작업을 과정을 전했다.

남해군 ‘평화의 소녀상’은 동백꽃을 한아름 안고 있다. 김서경 작가는 “박숙이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꽃을 들고 계신다. 그때는 박숙이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며 적극적인 소통과정을 거쳐 최종 디자인을 정한다고 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만난 김서경·운성 작가와의 인터뷰가 2시간을 넘겼다. 지역 시민단체 등과 함께 한 소녀상 건립작업과,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이후 진행된 ‘작은 소녀상’ 펀딩, 전국 학교에 소녀상 239개 세우기로 된 사연, 미래세대들에게 거는 기대 등 ‘평화의 소녀상’이라는 상징을 짊어지고 가는 두 작가의 조언과 함께 경남 부산 울산의 소녀상을 찾아 나선다. 퇴근길 골목 하나만 돌아가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 하나가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멀지 않다. 7편의 내비게이션을 따라 아직 도착하지 않은 광복을 기다리는 소녀의 뒷모습을 만나러 간다. 김지원기자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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