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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페이지] 소녀와 할머니 (5)피해자 없는 합의, 기림비는 누가 지키나
김지원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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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2  22: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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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 입구에 '인권자주평화다짐비'가 서 있다.


2015년 12월28일, 한국과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최종합의’를 맺었다. ‘불가역적’이라는 단어가 한창 사회를 달아오르게 했다. 불가역(不可逆)적 이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이다. 최종적인 협상이며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양측의 이날 합의는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쳤다. 당사국들 ‘불가역’이란 자극적 표현까지 넣어가며 합의에 나섰던 내용은 의외로 짧았다. 당시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기사다 후미오 일본외무상의 회당 발표문을 공동 발표했다.

일본측은 사죄와 지원책과 불가역을 말했다. 사죄-일본 정부는 당시 군 관여 하에 여성에게 상처를 입힌 점에 대해 통감하고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했다. 지원-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내 위안부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는 치유사업을 행하기로 한다. 불가역적-이들 조치에 대해 착실히,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한국은 일본의 조치를 전제로 불가역에 동의했다. 그리고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또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 비판을 자제하겠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양국간의 합의에는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과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해석으로 강한 반발에 부딪쳤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강제로 끌려갔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됐다. 일부에서는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받아야 할 피해자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해 생전에 정부 차원의 적정한 보상과 사과를 받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한일합의 발표 이후 소녀상 철거를 막겠다는 대학생들의 밤샘 투쟁이 이어졌고, ‘소녀상 지킴이’로 활동했던 김샘씨(25·숙명여대)는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12·28 합의 후속 조치로 2016년 7월 화해치유재단이 설립됐다. 일본정부가 출연한 10억엔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사업을 벌일 예정이었으나 통영지역 김복득 할머니와 같이 피해보상금을 되돌려주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화해치유재단에 대한 해체요구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맺어진 ‘12·28 한·일합의’는 지난 7월 재검토 TF가 발족해 올해 안에 재협상 추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올 5월 유엔에서도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가 충분치 않다며 재협상을 촉구했다.

 
   
▲ '평화의 소녀상'과 달리 댕기머리에 주먹을 쥔 손으로 긴 천을 들고 있는 모습니다. 바닥에 드리워진 천 위에는 시민모금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올 7월 창원은 위안부 기림비 ‘인권자주평화다짐비’(다짐비)의 수난으로 시끄러웠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 부근에 설치된 ‘다짐비’는 창원지역 시민과 종교단체, 학생, 창원시의 모금활동으로 2015년 8월27일 제막했다.

일본군위안부 창원지역 추모조형물 건립추진위원회(추진위)는 2013년 7월부터 시민모금을 시작했다. 2015년 광복 70주년에 맞춰 제막식을 준비했지만 일부 지역민의 반발로 27일로 늦춰졌다. 일부 상인들의 반발에도 다짐비가 이 곳에 세워진 이유는 일제 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의 중간집결지가 되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창원시는 역사성을 감안해 다짐비 설치장소로 시유지를 제공했다.

우여곡절 끝에 설치된 다짐비는 유난히 잦은 수난에 시달렸다. 다짐비 안내 표지판이 훼손되는가 하면 누군가 주변에 용변을 보는 일도 있었다. 올 7월에는 다짐비 발목에 자전거 자물쇠가 채워진 것이 발견되는가 하면 다짐비 앞에 놓인 꽃항아리를 훼손되기도 했다. 수난이 계속되자 창원시는 다짐비를 보호·관리하기 위한 지원조례 개정안을 10월 본회의에서 가결해 유적·기념물 지정과 보존 관리의 제도적 기반 마련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창원시의 공공조형물 건립 관리 조례에 의해 다짐비를 보존관리하기 위해서는 설립을 주도한 시민모임에서 다짐비를 기부채납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지자체 차원의 조례제정을 통한 위안부기림비 보호에 나서는 일은 창원시 뿐만이 아니다. 설치당시부터 철거와 재설치로 소동을 빚었던 부산시 역시 소녀상에 가해지는 각종 훼손 행위에 대해 보호를 위한 움직임이 일었고 6월 본회의에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다만 일부 시의원들이 불법조형물인 점을 들어 소녀상이 지원조례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민단체가 설립한 소녀상을 시 소유로 이관해야 하지만 소녀상의 위치가 옮겨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강원도 원주시는 2016년 6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등록했다. 충북 제천에서도 소녀상의 관리를 위해 건립추진위원회에서 제천시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공공조형물로 지정 등록했다. 서울시 종로구는 지난 7월 평화의 소녀상을 종로구 공공조형물 제1호로 지정했다. 강제 철거에 대한 불안감은 털어낸 셈이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기부채납 없이 공공조형물 지정이 이뤄져 평화의 소녀상은 정대협의 소유로 남아 있는 만큼 다양한 논의를 통해 해법을 찾는 일이 막막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바탕 소동처럼 ‘12·28’ 합의가 맺어졌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과 사죄는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쓰레기를 가져다 쌓고, 망치로 소녀상 머리를 내려치고, 입맞춤 한 인증샷이 나도는 등 전국에 세우진 위안부 기림비, 소녀상의 수난 역시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아직도.

김지원기자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그래픽 참고용>

건립 : 일본군위안부 창원지역 추모조형물 건립추진위원회

제막식 : 2015년 8월27일

장소 :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거리 앞

기금모금 : 2013년 7월부터 2년간 약 1억1000만원

시민모금 5800만원

천주교 등 4000만원

창원시 1000만원



작가 : 하석원·윤귀화·한경희·조란주 공동

재원 : 브론즈

크기 : 154㎝(높이), 16㎡ 공간

명칭 : 인권자주평화다짐비



댕기머리 정면을응시 양손으로 천을 꽉 쥔 형상. 흘러내린 천자락이 닿은 청동판에 모금에 참여한 사람들 이름 새김.



<비문>

인권 자주 평화 ‘다짐비’를 이 곳에 세우는 이유



일제강점기 마산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위한 중심 전진기지이자 중간 집결지였다. 뿐만 아니라 이 일대는 일제시대 주민운동의 센터였던 마산민의소, 각종 혁신정당과 사회 운동단체가 있었으며, 해방 후에는 3.15 의거, 부마항쟁, 6월 민주항쟁 등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건들이 일어난 곳으로서 창원지역 그 어느 곳보다도 역사성이 깊은 곳이다.

또한 오가는 사람들의 눈에 쉽게 잘 보이면서도 차 없는 거리로 혼잡하지 않고, 오동동 시민문화광장 입구로 시민과 늘 함께할 수 있어 대중접근성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바로 앞골목에는 3.15의거 발원지가 있고, 부마민주항쟁과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난 불종거리와 육호광장, 3.15의거탑, 김주열열사시신인양지 등 민주화의 상징적 장소 등과 인접해 있어 근현대사 탐방코스로 가치와 교육연계성도 좋은 곳이다.

일본군위안부추모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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