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선고…그래도 달라지지 않는 유족의 삶
사형선고…그래도 달라지지 않는 유족의 삶
  • 백지영
  • 승인 2019.11.28 2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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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득 사형선고 유족들 반응
사건 트라우마로 악몽의 나날들
일 그만두고, 사람 멀어져
“안인득 사형 선고요? 착잡하고 허망합니다. 그 사람이 뭘 했든 우리는 이제 시작이니까요”

안인득이 1심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날 밤, 유족 대표 A 씨가 본보와의 통화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심경을 전했다.

지난 25일, 재판 첫날 증인으로 참석했던 그는 당시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유족들의 상황을 재판부와 대중에게 호소했던 인물이다.

사건이 일어난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고인 물을 보면 피 웅덩이가, 계단을 보면 안인득의 칼에 맞은 조카가 질질 끌려 내려오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고 했다.

피범벅이 된 채 쓰러져 죽어있는 희생자들의 모습이 하루에도 몇 번씩 비디오처럼 보여 사나흘 밤을 꼬박 새우는 건 일상이라고 했다. 가끔가다 하루에 한 두시간씩 눈을 붙이는 게 고작인 상황.

밥 한 수저만 겨우 넘긴 후 닷새를 아무것도 못 삼키다 증언을 위해 참석한 법원에서 그는 모니터 너머로 안인득의 모습을 봤다.

“언론 보도에서는 안인득이 난동도 부리고 화도 내고 그랬다고 하던데, 우리 가족이 보기엔 너무 태연히 앉아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잘 먹고 잘 지냈는지 살이 쪄 보이더군요”

그가 전한 유족과 피해자들의 삶은 처참했다. 한 가족 내 사망자와 부상자가 함께 발생한 경우가 많아 더 그랬다.

이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30대 여성은 몸 왼쪽이 마비됐다. 딸처럼 보살폈던 조카를 잃은 50대 여성은 머리, 경추 등을 여러차례 찔려 한 계단만 올라도 숨쉬기 힘들어한다.

직접 공격을 받지 않은 이들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불이 난 것 같으니 같이 내려가자는 엄마를 말렸더라면’ ‘내가 타지에 나와서 살지 말고 엄마와 함께 살았더라면’ ‘다른 주민들 대피시켜보겠다며 엄마, 아내, 딸만 내려보내지 말고 내 가족과 함께 있었더라면’ 죄책감이 끝이 없다.

A 씨는 사건 이후 20년간 일하던 치위생사 직을 잃게 됐다. 잠을 못 자 머리, 목, 어깨 등 통증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2~3시간씩 필름이 끊겨 기억이 안 나는 상황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치과를 방문한 환자와 상담하고 예약 일정을 잡는 업무를 해야 하는데 상담 중 나도 모르게 헛소리를 하고 멍하게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마냥 회복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던 고용주는 더 이상 일을 맡기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그의 오빠, 올케 역시 일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차상위 계층으로 일용직 근무를 해왔던 오빠는 되려 사건 후 차상위 계층에서 탈락했다. 어머니와 딸을 떠나보내고 받은 보험금이 재산으로 산정돼 그렇게 됐다고 했다.

A 씨네 가족을 비롯해 유족들은 수시로 전화를 하고 만나며 서로의 아픔을 끌어안는다. 상황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이는 같은 유족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계 부처와의 통화에서 ‘6개월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냐’는 얘기를 들었다” “혼자 애 셋 키우는 상황인데 ‘가족 관계가 왜 그렇냐. 아버지가 뭐 하시냐. 돈은 왜 안 모았냐’는 질문을 안부차 하더라”며 서로에게 하소연한다.

돈과 관련된 오해도 유족들을 힘들게 한다. A 씨의 오빠에게는 보상금 받아서 치킨집을 차렸다는 소문이 났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돈을 많이 받은 줄 알고 빌려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유족별 상황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지금까지 이들 손에 직접적으로 들어온 돈은 검찰에서 지급한 구조금과 국민들이 모은 성금을 합해 1억 원 안팎. 전과 같은 직장 생활은 힘든 상황 속에서 이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평생 아픈 심신을 치료해야 한다.

치료비는 검찰을 통해 향후 5년간 최대 50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지만 치료에 벌써 2000~3000만 원을 쏟아부은 집도 있어 앞이 막막하다.

A 씨는 관련 인터넷 기사 댓글을 보지 않는다. ‘5~10억 받아 여유롭지 않으냐’는 얘기부터 ‘안인득과 고유정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같은 얘기에 상처받기 때문이다.

“괜찮으세요?” 무심결에 내뱉을 뻔한 질문을 입안으로 삼켰다. “우리는 절대 괜찮아질 수 없어요. 괜찮아진 척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척'이라도 해야 일이라도 다시 시작할 테니 그 ‘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해봐야죠”라는 그의 목소리가 착잡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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