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탑을 허문 뒤 다시 쌓아질까?
[객원칼럼] 탑을 허문 뒤 다시 쌓아질까?
  • 경남일보
  • 승인 2024.05.1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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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탑을 쌓기에는 10년, 허물어뜨리는 데는 한순간이라 한다. 그런데 그 허문 탑을 다시 쌓으면 허물기 전 상태로 다시 쌓을 수 있을까? 아마 물리적 유형물은 그럴 수 있고, 실제 허물기 전 탑보다 더 나은 탑을 쌓을 수 있을지 모른다. 사회 체계는 어떨까?

2017년 정부는 공사 중인 원자력발전소 공사를 중단시키면서 탈핵 정책을 밀어붙였다. 어느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원전 전문가들은 무리한 정책이라고 반발하고 탄원했지만, 문재인 정부 내내 탈핵 정책이 계속됐다. 우리가 쌓아왔던 원전 생태계는 무너져 내렸다. 기술자가 떠났고, 연구비도 줄고, 원전 인접 산업도 망가졌다. 현 정부 들어와 원전산업을 재개한다고 했지만, 무너지기 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떠난 기술자, 맥이 끊긴 기술력, 무너진 인접 산업을, 지금 와 되돌리겠다고 해서, 무너뜨리기 전 상태로 언제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다.

정부는 2024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과학기술예산을 싹둑 잘랐다. 자르기 전에 ‘연구개발 카르텔’이란 험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과학기술계는 혼돈 상태에 빠졌다.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은 꾸준히 늘어온 터였는데 결국 14.7% 깎였다(2023년 31.1조→2024년 26.5조). 올해 예산 증가율이 2.8%였던 것을 고려하면 대략 18% 정도 칼질한 셈이었다. 정부가 말한 카르텔이 있는지 모르지만, 일부 불합리하게 집행되는 예산이 있으면 그것을 찾아내 도려내는 것이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과학계 전체를 카르텔이라 싸잡아 매도하면서 옥석을 구분하지 않고 칼질했다. 연구개발 예산은 주로 인건비로 연구자를 키우는 비용이다. 그 바람에 대학원생, 계약직 연구원이 떠나기 시작했다. 원성이 대단했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통령실에 과학기술수석을 임명하고, 2025년 예산에서 원상 복구할 것이라고 했고, 파격에 가까운 방안이 계속 나온다. 이미 떠났고, 떠날 사람이, 내년에 예산을 늘린다고 되돌아오기 어렵다. 잘못된 것을 안 순간에 추경예산을 투입해서라도 연구 생태계를 지켜야 했다. 무너진 연구 생태계는 본래 상태로 되돌아오기 어렵다. 과학기술 경쟁력이 어디까지 밀릴지 걱정이다.

지금 응급실 뺑뺑이, 소아청소년과, 산과, 흉부외과, 뇌혈관 분야 등 필수 의료체계에 문제가 있어서 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 게 시급한 문제였다. 정부(보건복지부, 교육부, 행정안전부)는 의료개혁이란 이름으로 당장 2025년부터 현재 의대 정원 3058명의 65.4%인 2000명을 추가로 늘리겠다고 한다. 당장 교육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의대생, 전공의, 전임의, 의대 교수, 모두가 반대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밀어붙이고 있다. 그 결과 의대생은 동맹 휴학, 전공의는 집단 사직, 교수들도 사직 대열에 들어갔고, 법정 공방도 진행 중이다. 법정 다툼에서 정부가 2000명을 밀어붙이는 근거, 논리, 과정에서 허점도 드러났다. 증원 필요할지 모른다. 그토록 반대가 심한데, 적정 인원을 충분히 따져본 뒤 시행하지 못할 이유가 뭔가? 덕분에 전세계에서 좋기로 소문난 한국 의료체계를 이렇게 요란스럽게 망가뜨려야 할 이유가 뭔지 참 궁금하다. 재앙이 다가오는 것이 아니길 빈다.

정부 정책은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신뢰성 있는 정책을 만들 수단(조직과 예산)을 갖고 있다. 누군가의 빗나간 의도로 좋은 체계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탑은 되쌓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 체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한 번 무너진 시스템은 다시 복원하기 어렵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 것을 잘 지켜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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