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 네 여인
<이준의 역학이야기> 네 여인
  • 경남일보
  • 승인 2013.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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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食傷)
어을우동(조선 성종), 황진이(조선 중종), 조르주 상드(프랑스,·1804~1876), 루 살로메(독일·1861~1937)란 여인이 있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다가지만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뜻에서건 여러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이름을 남기며 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특히나 여성인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 지금 언급한 이 네 사람의 여인은 이런 이유로 참으로 희귀한 사람들 중에 속하는 사람들이라 하겠다. 편한 말로 평범한 여인네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귀족출신이면서 남성편력이 화려하다. 그리고 네 여인 모두 지적이며 뛰어난 문장가이다. 어을우동의 ‘부여회고시(扶餘懷古詩)’는 역사의 무상함과 대 우주자연의 무심하지 않음을 읊은 시이다. 황진이의 빼어난 시조들은 교과서에서도 실려 있고 노래로도 전해진다. 조르주 상드와 루 살로메의 글들은 지금도 문학계에서 깊이 있게 논의된다.

하지만 삶의 마무리는 조선과 서구가 달랐다. 생육신 남효온이 ‘추강냉화(秋江冷話)’에서 말하듯 어을우동은 왕실 종친, 무수한 고관대작, 벼슬아치, 선비들과 ‘어을우동’이란 이름 그대로 몸을 섞었다. 그리고 그 잘난 벼슬아치들은 국문(鞠問)현장에서 저마다 발뺌을 하고 마침내 어을우동만 교형(絞刑)에 처해진다. 마치 계사년 현재 별장 고위층 성상납 문제로 떠들썩하나 어느 하나 솔직하지 못한 남정네들의 행태와 꼭 그대로 빼닮았다. 어을우동과의 관계가 의심되는 성종은 자랑스러운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체면을 구긴 어우동의 사형을 허락한다. 증명되지도 않는 ‘이(理)’라는 실재론을 붙잡고 갑론을박하는 성리학으로 조선의 기풍을 세운다는 명분이었다.

황진이의 일화는 워낙 유명하여 세세한 것은 생략한다. 황진은 괴기한 남성중심 사회의 부조리를 비웃기나 하듯 시서예(詩書藝)와 치마폭으로 뭇사내들을 희롱하였다. 자기의 유혹에 넘어오지 않은 서화담은 마음으로 존경하였으나, 30년 동안 면벽(面壁)수행한 지족 선사마저 파계시킨 스스로를 대단한 여인으로 자긍하며 지족 선사는 하찮게 여겼다. 하지만 어찌 알랴? 지족 선사의 경지를. 취기와 격정의 만용에 흔들리는 가녀린 부나방이 하도 안쓰럽고 불쌍하여 함께 추어준 춤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을. 어찌 지족의 마음에 흐린 점 하나 남았을손가? 말년에 황진이는 모든 것을 버리고 금강산을 비롯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만행(萬行)하며 세상을 둘러보았으며 “나 때문에 천하의 남자가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지 못했으니, 내가 죽거든 관을 쓰지 말고 시체를 동문 밖 모래터에 그냥 내쳐 개미와 벌레들이 내 살을 뜯어먹게 하여 여인들의 경계로 삼아라”는 유언을 남기고 명을 달리했다.

조르주 상드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밑에서 자라 16세에 결혼하지만 별거하고 1830년 파리에 가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1832년 친구의 권유로 신문소설 ‘앵디아나’를 써서 일약 유명해졌다. 그녀는 남장차림으로 많은 문인들과 어울렸으며 자유분방한 생활로 남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시인 뮈세와 음악가 쇼팽과의 모성적인 사랑은 거의 전설적이다. 그녀가 없다면 쇼팽의 음악이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초기에는 위선적 제도를 비판하고 연애소설을 주로 썼지만, 이후 민중이야말로 역사의 참다운 주인이라는 인식과 자연과 조화된 인간의 삶을 그리는 글을 썼다. 루 살로메는 러시아 장군의 딸로 태어난 독일의 작가이자 평론가이다. 루 살로메는 존재 자체만으로 무수한 남자들에게 천재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니체는 로마에서 루 살로메를 만나 열병을 앓았다. 하지만 루 살로메는 독일의 동양학자 안드레아스 교수와 결혼한다. 평생 동안 R.M.릴케, 니체 등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S.프로이트와는 학문적으로 사귀었다. 루 살로메는 생시는 알 수 없으나 신유년 경인월 임진일이다. 인목 진토 사이의 방합세력이 묘목을 끌어 온다.

아마 이 정도 묘사에서 금방 세 개의 개념이 떠오를 것이다, 즉 도화, 식신, 상관이 그것이다. 그렇다. 도화는 남녀 간의 관계에서 염문(艶聞)이고, 식신은 왕성한 성욕과 표현력이며, 상관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젖어 편안해 하고 있는 기존의 편견 인습 관습 규범 규칙 규율 법규 형식 등을 비웃거나 깡그리 무시하고 깨뜨리는 기운이다. 하여 사주의 체가 강할 때에는 이 세 가지 기운은 밝고 활기차고 신선한 충격과 창의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비일상적인 남녀 스캔들도 화려한 로맨스로 감동적인 스토리로 회자되고 사람들도 수긍하는 분위기로 돌아간다. 하지만 기운이 약하고 세운 대운도 돕지 못할 때에는 이 세 개의 기운은 천박하고 더럽고 규모 없고 추한 몰골로 소리 난다. 남녀관계는 더러운 불륜이고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잡소리가 된다. 같은 행위인데 평판은 이렇게 달라진다. 참 희한(稀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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