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아픔과 상처가 생명과 평화로 재탄생하는 DMZ
민족의 아픔과 상처가 생명과 평화로 재탄생하는 DMZ
  • 경남일보
  • 승인 2013.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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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만 (환경부 차관)
몇 해 전 입적하신 법정 스님은 생전 홀로 산속에 머물며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소소한 즐거움을 책으로 즐겨 펴내곤 하셨다. 그 중 지금도 기억에 남은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스님은 겨울에 가끔 먹이를 찾아 내려오는 산짐승들을 위해 집주변에 먹이를 뿌려놓곤 하셨는데 나중에는 이웃집의 염소들까지 몰려와 애써 심어 놓은 묘목의 어린잎까지 죄다 뜯어먹어 버리고 말았다. 보다 못한 스님은 그 이후 자신을 졸졸 따라오는 염소들을 고함을 쳐서 쫓아냈다고 고백하면서도 “사람을 믿고 의지하려는 그 철없는 마음씨가 정겹게 느껴졌다”고 적고 있다.

‘찬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하는 조선의 마음이여’라고 노래한 김남주 시인의 시처럼 우리 조상들은 각박한 삶속에서도 하찮은 들짐승의 고달픔을 헤아릴 줄 아는 넉넉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단기간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이제 대도시로 대표되는 인공적인 생활공간은 자연과 철저히 괴리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세태 때문일까. 이제 한반도에서 야생 동식물들이 안심하고 서식하는 공간은 주로 인간의 출입이 제한되는 국립공원이나 군사지역, 혹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섬 등으로 파편화되어 가고 있다. 이 중 특히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구역 등을 포괄하는 DMZ 일원은 60여년간 인간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아 106종의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5097종의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 전체 멸종위기종의 43%, 전체 생물종의 13.4%에 해당된다고 하니 DMZ 일원이 한반도의 생물다양성에 갖는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특히 임진강 하구에 300여쌍이 서식하는 ‘저어새’와 철원지역에서 월동하는 ‘두루미’ 그리고 강원도 동부 산악지대의 ‘사향노루’ 등은 이제 DMZ 일원이 아니면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희귀 야생동물이다.

하지만 각종 군사적 규제로 인간의 개발욕구가 잠재되어 있는 이 땅에서조차 야생 동식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불법적인 산림개간으로 야생 동식물의 서식처가 서서히 잠식당하고 있으며 암암리에 행해지는 밀렵으로 사향노루는 민통선 지역에서 자취를 감춰 이제 DMZ 내부에서만 소수 개체의 생존이 확인되고 있다.

동서독을 나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후 독일인들은 동서독의 국경 1390km를 녹색띠로 되살려 보전하고 있다. 또한 전쟁의 아픈 상처를 기억하기 위해 베를린 시내의 일부 장벽을 허물지 않고 보전해 오고 있는데, 동베를린의 East side gallery는 이 장벽 위에 다양한 회화를 그리고 다채로운 문화공간을 연출해 해마다 많은 방문객이 이곳을 찾는다. 그 장벽 가운데 한 구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기록돼 있다.

‘민족과 인간 그리고 나무와 숲은 얼마나 강하며 또 얼마나 상처입기 쉬운가’(SO STARK UND DOCH VERLETZTBAR, DER VOLK, DER MENSCH, DER WALD, DER BAUM) 자연은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되살아나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쉽게 훼손되고, 또 한번 훼손되면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가 매우 어렵다.

올해는 정전협정(1953. 7. 27.)으로 남북한의 군사적 완충지대인 비무장지대(DMZ)가 형성된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2012년 제주도에서 개최된 세계자연보전총회(WCC)에서 DMZ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주요 의제로 논의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이제 DMZ는 국제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끄는 생태계 자원의 보고이다. 따라서 앞으로 국가차원에서도 DMZ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체계적인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사람과 자동차가 우글거리는 도시의 사막에서 결국 우리가 기댈 곳은 청청한 숲과 맑은 강물과 동물들이 깃드는 평화로운 자연밖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 주변의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은 내일이면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작은 미물에게도 자비로운 마음을 베풀 줄 알았던 옛 조상들의 지혜를 되돌아볼 때이다.

정연만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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