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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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입국 일본을 선도한 혼다 소이치로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는 1906년 대장장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포드자동차를 보고 난 후 자동차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의 유시마에 있는 자동차 정비공장 아트 상회에 견습 정비공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6년 동안 자동차 정비기술을 익힌 후 스물두 살이 되던 1928년 하마마쓰에서 아트상회 지점을 열어 독립하였다. 지방도시의 자동차 정비업으로는 발전에 한계를 깨달은 혼다는 점포를 정리하고, 진지하게 고심한 끝에 1937년에 자동차용 피스톤링을 제조하는 동해정기 주식회사를 설립한다. 도요타 자동차에 납품을 하였지만 3만 개 납품 수량 가운데 겨우 세 개만 합격할 때도 있을 만큼 엄청난 고생을 하였다. 그는 굴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한 끝에 도요타로부터 40%의 출자금을 얻어내는 데 성공하여 자본금 120만 엔의 꽤나 큰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이 전쟁에 패하면서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혼다는 동해정기를 도요타 자동차에 매각하고 전업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46년 혼다기연 연구소를 설립한 혼다는 소형엔진을 자전거에 부착한 ‘모터바이크’를 제조하였다. 이 제품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아서 시중에 나가자마자 한 달에 2~300대씩 팔리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1000대로 급증하였다. 그러나 이 모터바이크는 속도가 느린데다가 내구력이 약한 단점이 있어서 좀 더 강력한 프레임에 마력이 센 오토바이를 만들기로 연구에 돌입한다. 드디어 1948년에 성능 좋은 엔진을 부착한 오토바이를 생산하는데 성공하고 스피드에 꿈을 담아 달린다는 염원을 담아 ‘드림호’라는 이름을 붙였다. 드림호의 생산을 계기로 혼다기연은 유망기업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그러나 생산이 늘어나게 되자 판매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제조와 판매 부문 간의 균형유지가 당면과제로 등장하였다. 이 문제는 1949년에 판매와 재무 분야에 우수한 역량을 갖춘 후지사와 다케오(藤澤武夫)를 상무이사로 영입함으로써 간단하게 해결하게 되었다. 그리고 좀 더 개방적이고 도전적으로 사업을 펼쳐내기 위해서 1950년에 도쿄에 영업소를 설치한 후 2년 뒤에는 본사를 도쿄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장인 혼다 소이치로는 연구와 개발에 몰두하고 후지사와 다케오는 마케팅과 경영관리를 책임지는 공동경영자로서의 역할분담을 통하여 혼다기연을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올려놓게 된다. 혼다 소이치로는 경영 전반을 후지사와에게 맡기고 자신은 CEO라는 자리보다 엔지니어 역할을 고집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는 직원들과 지내기를 즐겼고 엔지니어들과 생산현장을 챙겼다. 평생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차체, 엔진 개발에만 매달린 혼다 소이치로는 소니의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井深大)와 함께 기술입국 일본을 선도한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기술자·기업가로 평가된다.

1954년 혼다기연은 유럽의 오토바이 경주대회인 영국 북부의 섬 맨(Man)의 TTF 레이스에 출전하겠다고 선언하였고 처음으로 출전한 1959년 레이스에서 1위에서 5위까지를 휩쓸었다. 이때부터 혼다기연은 미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미리 회사의 목표를 밝히고 나서 끊임없이 도전해나가는 이른바 혼다이즘을 확립하게 된다. 혼다는 이 시기부터 생산기술이 대폭 향상되었고, 각 분야의 관리시스템의 기반이 철저히 다져지게 되었으며 기술·생산·판매 등 모든 분야를 국제화게 된다. 기업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국제화 되자 사원과 회사가 서로 공통적인 행동기준과 가치를 소유하기 위하여 ‘우리 회사의 모토’를 중심으로 한 기업문화도 확립하게 된다. 그 모토에 담긴 내용은 ‘만드는 즐거움, 파는 즐거움, 사는 즐거움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한다’이다.

기업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고 믿었던 혼다 소이치로는 세습경영에 반대했고, 실제로 1971년 은퇴를 발표하면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 전부를 회사에 환원하였다. 가족에게는 유일하게 1%의 주식만 남겨줬다. 1991년 8월 5일, 혼다 소이치로는 간암으로 85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장례식은 외부 조문객과 근조화환은 일절 거절한 채 가족과 친인척 그리고 혼다자동차의 역대 사장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이렇게 장례식이 조촐하게 치러진 이유는 죽음을 앞두고 그가 남긴 유언 때문이었다. “평생 동안 자동차를 만든 내가 교통 정체를 일으켜 서민들에게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다. 절대 장례식은 치르지 마라!”



혼다 소이치로_2
혼다 소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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