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49)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49)
  • 경남일보
  • 승인 2013.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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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귓전에 울리던 준호의 축제 타이틀 ‘그녀와 함께 축제를’이 점점 아득해지고 있었다. 처음 유등의 꿈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부터 ‘그녀와 함께 축제를’ 위해 땀 흘려 준비했다. 하지만 환상적인 축제의 여주인공이 오지 않아 준호의 가슴속에서 취소됐다.

준호는 모형 비행기로 봉황이 나는 연습을 하던 걸 멈추고 넋을 잃고 남강 변에 걸터앉았다. 강 건너 민지와 땀 흘리며 뛰어 다녔던 진주성이 눈에 들어왔다. 화사하게 웃는 민지의 손을 잡고 남강 물위를 걷던 물결이 거칠게 일렁거렸다. 지리산의 긴 그림자가 남강에 드리우고 있었다. 초혼 점등을 기다리는 수많은 유등들의 그림자는 폭풍 전야처럼 출렁이는 물결에 일렁거렸다. 폭풍의 갈등이 휘몰아치는 준호의 가슴속으로 가을 강바람이 스치고 지나자 물결처럼 운명이 일렁거렸다. 스산한 가을 강바람에 식은땀이 등골을 오싹하게 해 정신이 돌아왔다.

“여기서 포기한다면…”

어둠속에서 준호의 눈빛이 광채를 냈다.

“포기한다면 또 다시 가진 자들의 노리개가 될 거다.”

준호 축제의 여주인공 민지가 오지 않는다고 했지만 축제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놈의 속을 일깨울 방법은 없을까?”

어떻게든 불을 지피고 싶은 준호는 긴 창작등 터널 속을 걷기 시작했다. 철없던 시절 유등 불빛 아래서 유등의 꿈을 이야기했던 친구들 얼굴이 스쳤다. 로봇 유등을 만들어 내걸었던 준호를 칭찬 해주고, 전해 내려오는 유등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젊은 자식의 꿈을 일깨워준 아버지의 유등의 꿈이 어른거렸다.

“유등의 꿈은 대를 이어야… 나에게 이번 축제는 대를 이어라는 사명을 부여 받은 축제이다.”

준호의 가슴속에서 유등의 꿈을 대대손손 이어나가야 할 의무감이 일었다.

“자식들에게 어떤 꿈을 이야기해 줄까. 포기한다면 두고두고 원망 듣게 된다.”

아무리 어려워도 자식들이 유등 불빛 아래서 꿈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등불을 밝혀야 하고, 대를 이어 두고두고 자랑스러운 축제가 될 것이며, 전해 내려오는 유등의 꿈을 이어가야 하는 의무가 나에게 주어져 있으니,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축제를 펼쳐야 한다고 다짐했다.

“대를 이어온 유등의 꿈은 계속 돼야 한다.”

준호는 정 사장이 평생 동안 피땀 흘려 잘 키운 자식 같은 유등을 부끄럽지 않게 키울 것을 다짐했다.

“대대손손 번창하리라.”

준호는 정 사장의 자식들이 등불을 밝히고 서 있는 당당한 모습을 보고 피땀 흘리며 유등을 만들던 정 사장의 굵은 땀방울 앞에 고개 숙였다.

소망등 터널 속 어두운 그림자들이 경건히 합장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소망의 등불을 밝혀 모두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어두워진 소망등 터널에서 미처 달지 못한 간절한 소망을 내 걸고 있었다.

“나 하나 참여하지 않는다고 축제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준호는 끝이 보이지 않는 붉은 소망등 터널 속에서 뭇 사람들의 소망이 하나하나 모여 끝없이 이어진 장관을 보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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