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 (51)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 (51)
  • 경남일보
  • 승인 2013.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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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속에 걸린 유등에 여러 편의 시(詩)가 보였다. 사랑을 노래한 시, 유등의 혼을 새긴 시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걷던 준호는 한편의 짧은 시 유등 앞에 섰다.

“인생에 폭풍의 갈등이 일고 운명은 일렁이지만 삶에서 결국 내가 이긴다.”

삶에서 결국 내가 이긴다는 문구에서 소름이 돋았다. 준호는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솟구치는 강력한 의지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폭풍에 운명이 일렁일지라도 결국에는 이기는 게 진정한 삶이라고 받아들인 가슴으로 마지막 문구를 다시 암송했다.

“내가 이기는 것이다.”

침묵이 흐르고 최후의 순간처럼 준호의 생각은 중대한 결단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나를 포기한다면 지는 것.”

유등의 꿈을 포기한다면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취소된 축제와 함께 꿈을 잃어버리고 떠돌 것이며,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고, 영원히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단을 내렸다.

준호는 불끈 쥐고 있던 휴대폰을 쳐다보았다.

“내가 이기는 거다.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인간은 되지 말자. 내가 이기자. 이기는 거다, 딱 한번 만이라도 이겨보자, 나를…”

준호는 밤하늘에 빛나는 샛별을 우러러보며 화사하게 웃었다. 인생의 폭풍을 이긴 자신을 위해 축제를 펼치기로 했다. 별과 함께 강물 위를 걷는 준호의 상상 속에 봉황이 하늘을 나는 환상의 세계를 꿈꾸었던 철없던 시절 판타지가 펼쳐졌다.

“내일은 땀 흘려 준비한 축제를… 꿈의 유등을 달아 영혼의 등불을 밝힐 거다.”

준호는 연인의 거리 대나무 숲속 벤치 옆에 세워 둔 민지 유등에 등불을 밝혔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만은 아니다. 소망등에 불을 밝히는 건 누구에게 자랑 하려는 게 아니라 소망이 담긴 꿈에 희망의 등불을 밝히는 거다.”

준호는 화사하게 웃고 있는 민지 유등을 안아주었다. 민지 유등을 꼭 끌어안으며 모처럼 만난 반가운 친구처럼 뜨겁게 안아주었다.

“남이 부여해주는 가치에서는 의미를 찾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유등의 꿈을 이야기할 것이다. 내 꿈, 마음의 등불을 밝히자.”

준호는 아득한 세월이 흐르고 어른이 된다면 자식들에게 유등의 꿈을 이야기해 줄만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땀을 흘리기로 했다.

별들이 하나둘 내려앉는 남강 변을 하염없이 걷던 준호는 강물에 일렁이는 텐트 불빛들을 보고 천천히 걸어갔다. 오토캠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삼삼오오 유등 불빛아래 모여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남강 변 둔치에 길게 늘어선 차량 앞에 물위에 설치된 데크 위의 수상 텐트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게 마치 물의 나라에 온 듯했다.

준호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보았다.

“지구를 지키는 로봇 유등이네.”

젊은 아버지는 유치원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의 머리를 몇 차례 쓸어 주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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