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진주성 비차 (1회)
[김동민 연재소설]진주성 비차 (1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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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1. 연에 앉은 새
방패연이었다.

이마에 둥근 달을 오려 붙이고, 중앙 방구멍 옆 좌우에는 빨강 파랑 노랑 검정의 색종이로 장식한 연이었다. 꼬리는 없어 수놈이었다. 세로 두 줄의 벌이줄과 가로 활벌이줄을 잡았다.

그런 연 하나가 마을 초입에 있는 그집 지붕 위로 두둥실 높이 떠 있었다. 어디선가 누가 띄운 연이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거기 하늘에 걸려 있는 것이다.

설주 두 개나 네 개, 아니면 여섯 개로 짜서 중앙에 자루를 박고 실을 감는 얼레를 잡고 있을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도 멀리 있는 듯하다. 연줄이 어느 방향으로 드리워져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많이 날려본 솜씨임에는 틀림없다.

한데, 무슨 일일까? 길가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넋을 잃은 채 목을 빼고 그 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삽사리란 놈도 제 딴에는 무엇을 아는지 그 연을 보며 연방 컹컹 짖어대었다.

그때 그 연이 내려다보듯 하고 있는 그집 쪽을 향해 걸어가던 웬 탁발승도, 무심코 같은 곳을 바라보다가 자칫 손에 든 바리때를 떨어뜨릴 뻔했다. 그의 입에서 경악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얼굴에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묘한 빛이 서렸다. 그러고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는 품이 마치 스스로 뭔가를 확신한다는 모습과도 같았다.

그곳에는 실로 신기하고 경이로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공중에 띄워놓은 그 연의 윗부분에 새 한 마리가 올라앉아 있지 않은가! 분명히 새였다. 몸집이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는, 참새 같기도 하고 인근 산에서 날아온 이름 모를 멧새 같기도 했다. 연에 앉은 새.

그런데 하늘에서는 또 하나의 희한한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여러 소리들이 나왔다.

“어? 새가 한 마리 더 왔네? 암컷이 수컷을 유혹하려고 온 게 확실해.”

“에이, 여기서 보고 암수 구별을 어떻게 할 수 있는데?”

“암컷이 맞는다고. 연에 앉아 있는 새 앞에서 계속 꼬리와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잖아.”

어쨌든 간에, 뒤에 온 새는 앞의 새더러 어서 같이 가자고 하는 것같이 보이긴 했다. 하지만 수컷은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결국 암컷은 포기한 듯 휑하니 날아가버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콤한 구애(求愛)가 아니라 생명을 노리는 무서운 포식자가 나타났다. 흑갈색의 커다란 솔개가 방패연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고는 빙빙 돌고 있는 게 누구 눈에도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연에 앉은 새를 덮치려는 게 확실해 보였다.

“크, 큰일났다! 어, 어서 달아나라, 새야.”

“연 날리고 있는 사람이 어딨지? 연을 빨리 안 내리고 뭐하는 거야?”

사람들이 오히려 안절부절못하며 야단난리가 났다. 하지만 정녕 기이한 것은 그 새의 반응이었다. 자기를 낚아채려는 맹금을 눈치 채지 못했을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동요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솔개도 그 작은새에게 그만 질려버렸는지 어느 순간 선회를 멈추고 높은 허공 어딘가로 몸을 솟구치더니 금방 사람들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암컷의 유혹과 포식자의 위협을 이겨낸 연 위의 새. 그 새는 그 고을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을 전하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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