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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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징 1.연에 앉은 새
탁발승의 하얀 고무신도 다시 오뚝한 코끝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마도 연에 미쳐 있거나, 연에 얽힌 각별한 비밀을 가진 이가 날린 연일 거라고. 좀 더 하늘 귀에 가까이 다가가서 소원을 빌어보기 위해서거나, 사랑하는 여자에게 애정의 징표로서 알리고자 하는 연일 거라고.

잠시 후, 탁발승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그 연을 머리에 얹어놓고 있던 그집 사립문 앞에 가서 염불을 외기 시작했다.

“아, 어떤 스님께서 시주 받으러 오셨는가 봐요.”

“그래? 그럼 어서 나가봅시다.”

그런 말소리와 함께 장지문이 급히 열리고 젊은 농사꾼 부부가 마루로 나왔다. 그들은 합장하며 중년의 탁발승을 맞이하였다. 정작 집주인들은 자기들 초가지붕 위에 떠 있던 연으로 인해 밖에서 떠들썩하게 벌어졌던 일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듯했다.

“고맙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집안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허허.”

여자가 쌀독에서 퍼온 쌀을 받아 넣은 바리때의 나무뚜껑을 덮으면서 탁발승이 말했다. 그런데 웬 영문인지 그는 곧장 다른 집으로 갈 기색이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남의 여자의 부른 배를 슬쩍 한 번 보고 나서 이런 알 수 없는 소리를 하였다.

“장차 태어날 아이는 하늘을 훨훨 나는 새의 운을 타고 났으니, 그 이름을 새 조, 운수 운, 그렇게 해서 조운(鳥運)이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나중에 성장하여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새처럼 날아서 우리 조선을 건질 귀인의 생명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비봉산 서편 자락에 감싸인 가마못 안쪽 마을 어귀에 있는 그집 마당에 홀연 긴장감과 경악의 기운이 흘렀다.

“나, 나라가 위기에 빠진다고요, 스님?”

이마가 반듯하고 콧대는 약간 고집스러워 보이는 남편이 크게 놀라 물었다. 만삭인 그의 아내도 몹시 두려워하는 빛과 함께 못 미더워하는 얼굴이었다.

“나라를 위기에서 건질 그 귀인이 누군가요? 아, 그보다도 우리 아이가 어떻게 새처럼 날 수 있겠어요?”

그러자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지은 웃옷을 입은 탁발승은, 밑이 빨고 위가 바라져 연잎 모양과 같이 생긴 바리때를 든 손을 가늘게 떨었다. 그 순간, 살가죽이 쭈그러질 정도로 비쩍 야윈 그의 몸에서는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부부는 그런 탁발승에게서 왠지 모를 신비감 같은 것을 느꼈다. 답변을 궁리하기 위한 듯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며 그가 말했다.

“글쎄요. 어떻게 생각하면 진정 무서운 일이지요. 사실 빈승도 그게 의문입니다. 사람이 새처럼 난다는 것도 그렇고, 또, 그 귀인이 누군지도 현재로선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 눈앞에 내다보이는 아이의 운명이 그렇게 돼 있군요.”

“……!”

“……?”

부부는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만 마주보았다. 그냥 자비심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그에게 작은 성의를 베풀어준 대가치고는, 지나치게 거창하고 엉뚱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지만 탁발승은 갈수록 한층 심각하고 진지한 모습이었다.

“제가 풍수 공부에는 일천(日淺)한 몸이지만…….”

그러면서 탁발승이 한 번 더 나무로 대접처럼 만든 공양 그릇을 바투 잡았다. 이번에도 그에게선 마른 검불을 밟거나 뒤적일 때 나는 소리가 스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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