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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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1.연에 앉은 새
“저 산이 생긴 형세를 보십시오. 참으로 신묘하지 않습니까? 불가사의 그 자체라고나 할까요?”

그곳에서는 그 고을 주봉(主峯)인 비봉산과, 꼭 가마솥같이 생겼다 하여 가마못이라고 불리는 못이 한눈에 바라다보였다.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군요. 지금까지는 그냥 예사로 보아왔는데…….”

남편이 신기하다는 듯 믿음직스럽게 보이는 두툼한 입술을 열어 말했다.

“꼭 새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정말!”

얼굴이 갸름한 산모도 해산을 코앞에 둔 배에 비해 코스모스같이 가냘퍼 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붓기 오른 얼굴이지만 아름다운 용모였다.

“한데, 문제는…….”

문득 탁발승이 자기 몸에 걸친 잿빛 승복처럼 어두운 낯빛을 지었다. 음성도 돌덩이를 매단 듯 무거워졌다. 무엇보다 와락 무섬증이 덤벼들었다. 똑같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부부가 또 눈을 마주쳤다. 별안간 악귀가 내뿜는 입김과도 같은 두렵고도 침침한 공기가 집과 사람을 휘감았다.

“가마같이 생긴 저 가마못이지요.”

탁발승이 정맥이 내비칠 정도로 살이 없는 손가락으로 가마못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음성은 나직했지만 듣는 사람 가슴팍을 파고드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예? 가마못이…….”

“저 못에서 많이 자라는 마름의 잎은, 어린아이 머리가 헐었을 때 쓰면 좋은데…….”

조금 전까지 비봉산을 올려다보고 있던 부부는 가일층 가슴이 섬뜩하여, 담장 가까이 붙어 자라는 오래된 감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동구 밖 가마못으로 동시에 눈을 돌렸다. 부부와 같은 쪽을 보며 비봉산을 이야기하는 탁발승 목소리가 메마르게 갈라져 나왔다.

“본래 저 산에는 봉황새가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그래서 사람들은‘봉산’이라고 불렀고요.”

그 순간에는 탁발승이 그들 부부 눈에, 아무리 배가 고파도 좁쌀은 절대 먹지 않고 대나무열매만 먹고, 보통 나무에는 깃을 들이지 아니하고 오동나무에만 깃들인다는, 저 상상 속의 봉황새처럼 비쳤다. 그만큼 그의 말에는 이제 신뢰감이 묻어난다고나 할까?

“그런데 저 가마못 열기가 너무나 뜨거웠지요. 봉황새는 가마못에서 치솟는 불길에 타서 죽을 것 같았습니다.”

눈가가 곁불을 쬔 듯 붉어지는 탁발승이었다.

“아, 어떡해요?”

남달리 심성이 여린 산모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낯을 찡그리는 것으로 보아 뱃속 아기가 발길질을 심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 아내를 보는 남편 머릿속에 신혼 첫날밤이 떠올랐다. 가만히 안기만 하는데도 족두리가 벗겨져 내릴 만큼 전신을 부들부들 떨어대는 바람에 자칫 합방을 하지 못할 뻔했던 그날 밤, 토벽의 봉창을 비추는 달빛은 어쩌면 그리도 깊고 푸른 숨소리를 내는 것같이 느껴졌던가.

“무릇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자기가 있던 곳에 정이 가는 법 아닙니까?”

탁발승의 목소리도 바지랑대에 올라앉은 잠자리 날개같이 떨렸다.

“그래 봉황새도 산에 둥지를 틀고 어떻게든 견뎌보려고 했지만…….”

결국 봉황새는 훌쩍 날아가버렸고, 사람들은 그때부터 봉산에‘날 비(飛)’자를 붙여 비봉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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