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6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6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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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2. 두 아이
“그래도 사람은 사람이고, 새는 새인데…….”

남편이 오늘내일 보게 될 내 자식이 사람의 운이 아니고 새의 운을 탔다는 소리에 약간 께름칙해하는 표정을 짓는데, 탁발승 입에서는 더한층 놀랍고 기이한 말이 흘러나왔다.

“조금만 더 말씀드리지요. 이제 곧 충청도 땅에서도 새 사내아이가 탄생할 것인데, 이 댁 아이와 그 아이는 한날한시에 세상 빛을 볼 것이며, 장성한 후에 크나큰 인연을 맺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새가 숲을 찾지 않으면, 숲이 새를 찾아나서야…….”

부부는 아까처럼 얼빠진 모습들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도대체 수수께끼 같은, 아니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여기 경상도와 거기 충청도가 어디 삽짝 밖만 나가면 되는 거리인가 말이다. 더욱이 두 아이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 벙벙한 표정들을 읽은 탁발승이 미리 단단히 다짐을 두듯 했다.

“빈승도 더 이상은 알 수가 없습니다.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이야기해서는 안 되리라 봅니다. 그것은 천기누설이 될 것입니다. 태아에게 큰 화가 미칠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어쨌든 장차 위태로운 우리 조선을 구할 훌륭한 인물들로 자랄 수 있기를 부처님께 기도 드릴 뿐입니다.”

“스님은 대체 누굽니까?”

남편이 사뭇 흔들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아내도 커다란 눈으로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탁발승은 그저 이렇게 선문답하듯 할 뿐이었다.

“산도 아닌 산에 있는, 암자도 아닌 암자에 잠시 머물고 있는, 떠돌이 아닌 떠돌이 중이지요. 거기는 암자 속에 산이 있는 곳이랍니다. 허허.”

부부는 대체 저게 무슨 의밀까 싶어 의아해하고 있는데, 탁발승이 사립문 쪽으로 무겁게 한 걸음 옮기면서 혼잣말같이 하는 소리가 이랬다.

“산이면 강 따라 강이면 산 따라 그렇게 가야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거늘, 나무와 물은 벌써 저만큼 가버렸도다!”

“예?”

부부 눈에는 그가 나무나 물처럼 비쳤다. 머리가 띵하고 다리가 비치적거렸다. 별안간 그가 요사스러운 중같이 느껴졌다. 어쩌면 악귀가 중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우리 자식이 태어나지 못하게 방해와 저주를 하려고 온 게 아닌가 싶었다.

“제발 이 집안에 좋지 못한 기운이 흘러들어오지 않기를…….”

까칠한 그의 입술을 통해 이어지는 소리들은 더한층 기분 나쁘고 불가해한 말이었다.

“때로는 부처도 아닌 부처와 마귀도 아닌 마귀가 사람을 쫓아오는 수도 있나니…….”

남편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세상도 온통 소병(素屛)으로 둘러쳐지는 듯했다. 상중의 제사 때 사용하는 흰 종이만으로 발라진 병풍이었다.

“새의 깃털이 떨어진 자리에는 바람이 일기 쉬운 법, 무슨 나무를 방풍림으로 삼아야만 보호할 수…….”

탁발승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아내 앞을 막아섰다. 탁발승의 말이 마귀의 독기로 변해 아내와 뱃속 아이를 해칠 것만 같았다. 그는 탁발승의 손에 들린, 자기들이 시주한 쌀도 담겨 있는 바리때를 빼앗아 마당에 패대기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물었다.

“스님은 부처를 모십니까, 마귀를 모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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