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7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7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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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2. 두 아이
까치가 날아가던 지붕 위로 까마귀떼가 지나가고 있었다. ‘카옥, 카오옥!’ 하는 불길한 울음소리를 떨어뜨려놓고서였다. 탁발승보다 아내가 놀라 먼저 말했다.

“여, 여보! 스님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러자 탁발승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새가 연 위에 앉았습니까, 연이 새 위에 앉았습니까?”

남편 안색이 불을 담은 듯 벌게졌다.

“그, 그건 또 무슨 해괴한……?”

“세상 모든 것들은 어떻게든 서로 인연을 맺게 되는 법이지요.”

탁발승 눈길이 남편에게서 아내에게로 옮겨졌다.

“부인이 아이를 갖지 못해 마음고생들이 심하셨지요? 그래 용하다는 점쟁이한테는 다 가보고, 잉태할 수 있다고 하는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보셨고요.”

“스님께서 어떻게 그걸……?”

그러면서 두 눈에 눈물이 핑 도는 아내였다. 남편도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뒤돌아보면 가문을 이어갈 아들을 얻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가시 돋친 고추를 따서 먹었고, 누런 장닭의 불알을 생으로 먹었다. 다산(多産)한 집의 식칼을 몰래 훔쳐서 도끼를 만들어 베개 아래 두고 자거나 속옷에 차고 다녔다.

뿐만이 아니었다.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광경, 북을 치는 장면, 수탉의 싸움 모습, 전쟁놀이 등을 그린 백동자병풍(百童子屛風)을 아내의 잠자리에 펴고 잤다. 그런가 하면, 빗돌에 새겨놓은 글자 가운데 ‘子, 男, 勇, 力, 文, 武’ 같은, 소위 사내와 연관이 있다는 글자를 파서 가루로 만들어 삼키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중 하나가 영험을 보였는지, 이도저도 아니면 삼신할미가 도왔는지, 하여튼 마침내 아내는 입덧을 시작한 것이다.

“감꽃은 그해에 자란 녹색 가지에만 피는 법, 백년이 되면 천 개의 감이 달리고…….”

탁발승이 마당가에 자라는 감나무를 보며 하는 그 말에, 아내 가슴을 적셔오는 민요 하나가 있었다. 꿈많던 처녀 시절에 벗들과 감나무 밑에 모여 부르던 노래였다. 감꽃을 주우면서 이별한 사랑, 그 감이 익을 적에 오시면 사랑, …….

부모의 반대로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진 슬픔과 고통을 견디지 못해 성 안 우물에 몸을 던진 벗도 있었다. 이성 간의 사랑이 부모자식 간의 사랑보다 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왠지 가슴이 한참 먹먹해진 아내는 자신을 다독거렸다. 가마못 열기를 이겨낼 수 있는 강한 봉황새 같은 아들만을 생각하자고.

“언젠가는 빈승이 조운이를 만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게 탁발승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대문간을 나서자마자 크게 다툰 사람같이 다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그의 걸음걸이는, 도도히 흘러가는 물길같이 가로막을 것이 없어 보였다.

“여보! 지금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죠?”

아내가 물었다. 남편이 대답했다.

“꿈을 꾸고 있는 게 맞소. 태몽 말이오.”

그러더니 사립문 밖을 내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모든 악으로부터 우리 조운이를 지켜주기 위해 온 선승이오.”

보랏빛과 주황빛이 엎질러진 물감같이 서려 있는 서녘 하늘로 기우는 낙조를 전신으로 받아내며, 자기 키보다도 훨씬 긴 그림자를 끌고 멀어져가는 탁발승의 뒷모습은 이 세상 사람 같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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