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9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9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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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2. 두 아이
“솔방울보다 큰 잣나무 열매 같은 자식이…….”

기원하는 듯한 여인의 말에 사내가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보다도 암수한그루인 저 잣나무처럼…….”

여인은 그만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예에? 욕심도 과하셔라! 어쩌면 그런……?”

“아아, 아니요. 그냥 농담으로 한번 해본 소리요. 쌍둥이는 무슨……?”

그 말을 남긴 사내는 홀연 입을 다물고 주위에 모여 서 있는 잣나무들을 둘러보았다. 바느질 솜씨 뛰어난 아내가 애지중지하는 바늘 모양의 잎에도 달빛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쏘아보는 듯한 그의 눈빛이 형형했다. 두 눈에 일렁이는 것은 의외에도 애틋한 그리움의 물결이었다.

잘 듣거라. 네 혈통은 신라 경순왕에게서 나왔느니라. 일러주시던 아버지 김석. 잣을 해송자(海松子)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은, 신라 사신들이 중국에 갈 때 잣을 가져다가 팔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셨던가.

유달리 아들 욕심이 많으셨던 선친이었다. 성균 진사로서 영의정에 증직되기도 하지만, 기묘사화를 당하여 드디어 은둔하여 벼슬하지 않으셨던 당신을 떠올리는 사내 눈에 엷은 눈물방울이 맺혔다. 놀란 여인이 마음으로 그 눈물을 받아마셨다.

“우리집 수랑(守廊)을 좀 더 좋게 꾸몄으면 하는데 부인 생각은 어떻소?”

사내의 느닷없는 그 말에 여인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갑자기 그 방을 왜……?”

손님방으로 사용하는 수랑은 하인들이 거처하는 행랑채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여인이 볼 때는 전혀 손색이 없었다. 오히려 장차 태어날 자식을 위해 아이들이 쓰는 작은사랑을 손보자면 또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부쩍, 집으로 찾아온 내방객들을 극진히 대하시던 생전의 아버님 모습이 자꾸 생각나서…….”

그 말끝에 사내는 또 이랬다.

“얼마 전 꿈에는, 나는 여기서 살란다, 하시면서 수랑에 드러누우시고는…….”

여인의 가슴이 칼로 저미는 듯 아려왔다. 근동에서 이름난 효자로 알려졌던 남편은, 저승에 간 선친이 이제 이승에 와서는 당신이 살던 집의 손님이 되어 찾아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리라. 차라리 불귀의 객이 더 마음 아프지 않을지도 모른다. 홀연 달빛이 흐느끼는 소리를 내는 듯했다.

“지난 정월 열나흗날 밤에 동리 사람들이 하던 잣불놀이가 생각나시는지요?”

여인이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었다.

“속껍질을 벗긴 잣 열두 개를 바늘과 솔잎에 꿰어 불을 켜서 열두 달에 비겨보면…….”

사내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잣의 불빛이 밝으면 그달, 혹은 그해의 신수가 좋고, 불빛이 약하면 신수가 나쁘다고 점쳐보는 잣불놀이였다.

“중국이나 일본에도 그런 민속놀이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우리 민족은…….”

지금 달은 잣나무 가지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는 것같이 보였다. 그처럼 아내가 지아비 마음을 풀어주려고 애씀에도 불구하고 선친의 불운을 잊을 수 없는 사내 마음은 움직일 줄 몰랐다. 그것을 아는 여인의 심정은 더한층 무겁고 조급했다.

“사주나 운을 말하면 미신이다, 사람을 해치려는 나쁜 귀신의 꾐에 넘어가는 짓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것을 떠나 그 잣불놀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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