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2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2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2.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장. 2.그려지는 골격
아버지가 일찍 죽은 그 광녀의 오라버니와 어머니가 조운을 보면 늘 하는 말이었다. 가마못 안마을에서도 제일 뒤편으로 외따로 떨어진 다 허물어져가는 오두막에 살고 있는 그들이었다. 그럴 때 조운이 하는 소리는 한 가지였다. 연 하나 더 만들어 주면 돼요.

그러나 바로 얼마 전에 강변 대숲에서 그 광녀가 조운 자신에게 했던 그 일은 도저히 입밖에 꺼낼 수 없었다. 그녀의 가족들이니 얘기해줄 수 있었다. 말해주어야 했다. 아니, 그녀의 가족들이기에 더 들려줄 수가 없었다.

그때도 광녀는 그녀의 등장을 조운의 등을 탁 치는 것으로 알렸다. 그렇지만 그 다음 언동부터는 완전히 달라졌다. 옷고름을 씹지도 몸을 배배 꼬지도, 심지어 나 연 한 개 더 만들어 줘. 히히히, 도 아니었다. 그러면? 광녀는 광녀가 아니었다. 그녀가 이랬다.

“나, 너 어미 되고 싶어. 너, 나 아들 안 될래?”

조운은 그곳 대나무들이 일제히 자기를 향해 쓰러지는 것 같았다. 덮쳐오는 듯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쫓아버리기 위해 손에 쥐고 있던 대나무를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치 무당이 대를 잡고 잡귀를 물리치는 것처럼.

그러자 한층 경악할 사태가 벌어졌다. 하나의 춘화(春畵)라고나 할까. 광녀가 순식간에 저고리를 훌러덩 벗어 던진 것이다. 그러고는 뽀얀 젖가슴을 쑥 내밀며 말했다.

“우리 아기 배고프지? 어서 어미 젖 먹어.”

조운은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았다. 해를 오랫동안 바라보았을 때 눈이 캄캄해지는 느낌과 비슷했다. 그런 조운의 귀에 이번에는 이런 소리가 들렸다.

“나, 너 각시 되고 싶어. 너, 나 신랑 안 될래?”

“미친년!”

조운은 끝내 소리 지르고 말았다. 그러고는 대나무를 더한층 힘껏 휘둘렀지만 그것은 광녀의 몸에 닿기 전에 거기 울창한 대나무들에 먼저 부딪혔다. 대나무가 방패 역할을 해준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고 어떤 짓을 했는지 조운은 조금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가 문득 정신을 차린 것은 여자 울음소리를 듣고서였다. 난데없이 대숲에 울려 퍼지는 여자 울음소리.

조운은 그만 두 눈을 있는 대로 크게 떴다. 울고 있다. 미친년이 울고 있다. 언제나 ‘히히히’ 하는 괴상망측한 웃음소리만을 내던 광녀가 ‘흑흑’ 하고 운다.

“어, 어…….”

더없이 당황하는 소리와 함께 조운의 손에 쥐어져 있던 대나무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다시 광녀 입에서 흘러나오는 예의 저 웃음소리. 히히히.

조운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웃다가 이번에는 또 울음. 광녀가 번갈아 가며 웃고 운다. 흑흑흑. 히히히. 웃는 그녀보다 우는 그녀가 조운은 더 무서웠다. 조운은 달아나려고 했다. 하지만 대나무뿌리가 발을 휘감은 듯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광녀의 웃음소리, 울음소리에 머리가 터져날 것만 같았다.

얼마나 미친년의 미친 짓이 계속되었을까? 이윽고 광녀는 제풀에 지쳐 힘이 빠진 것같이 보였다. 조운은 혼미한 상태에서 꿈결에서처럼 지켜보았다. 한참이나 숨을 헉헉거리던 광녀가 댓잎 낙엽이 몇 개 묻어 있는 저고리를 주워들어 다시 상체에 걸치고 있는 것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